[비로봉에서] 불 꺼진 ‘시민의 창(窓)’ KBS
[비로봉에서] 불 꺼진 ‘시민의 창(窓)’ KBS
  • 심규정
  • 승인 2020.02.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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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지난해 말부터인가. 늦은 저녁 KBS 원주방송국 앞을 지날 때마다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KBS 로고가 불 꺼진 채로 보이지 않았다. 건물은 어두컴컴한 윤곽만 보일 뿐 일반 건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평상시 같으면 멀리서 봐도 하늘색 로고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 뭔가 불길한 징조를 웅변하고 있는 듯 했다. 방송사 로고는 24시간 켜져 있는 게 상식이고 숙명이다. 깨어 있는 방송’, ‘국민의 방송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준공영방송인 원주 MBC, 민영방송인 G1도 아닌 공영방송 KBS의 이런 모습은 솔직히 낯설고 뜨악하기 이를데 없다. 이심전심이었을까. KBS 원주방송국 폐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이선경 공동대표도 지난 4일 국민청원 운동 참여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에서 불 꺼진 KBS로고를 언급했다. “폐쇄 위기에 처한 KBS 원주방송국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KBS가 원주방송국을 비롯한 전국 7개 지역방송국 통폐합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지난 2004년 영월.속초.태백방송국 폐지에 이은 통폐합 2탄이다. KBS 직원들에 따르면 오는 5월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구역 변경 허가를 받으면 통폐합이 이뤄진다. 적자 누적에 따른 통폐합이라는 KBS 측의 앵무새 같은 설명에 KBS 내부에서조차 마치 지역방송국을 비효율의 대명사, 적자의 원흉으로 낙인찍는 듯한 모습에 말문이 막힌다”,“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오늘의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에서 주객이 전도된 듯한 모습이다. KBS 춘천총국은 지난 3일부터 저녁 7시에 45분 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9시 뉴스는 원주방송국에서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큐시트 작성은 물론 취재.편집 권한은 춘천 총국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취재인력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전략이다. 이래가지고 TV의 장점인 동시성과 속보성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솔직히 국민의 전파료로 운영되는 KBS의 이런 태도는 지역의 MBC, G1의 취재 인력, 지역밀착형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KBS가 아무리 취재 인력을 충원한다고 강조해도 조직슬림화로 가는 좋지 않은 전조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친화력을 더욱 떨어뜨릴 수밖에 없고 위상은 쪼그라들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함께 부대끼고 자주 소통해야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이게 바탕이 되어야 알찬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 주권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땅덩어리가 넓은 강원도 현실을 도외시한 채 다른 지역처럼 획일화된 총국 집중화는 보도의 주마간산(走馬看山)을 심화시킬 뿐이다. 원주권 뉴스가 가뭄에 콩 나듯 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 될 것이란 범시민대책위의 설명이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이러다가 정보의 깊이, 밀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열매를 맺게 하는 복지저널리즘(Welfare Oriented Journalism)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간 불 켜진 KBS 원주방송국 로고는 시민들 가슴 속에 등대로 우뚝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어두운 바다를 비춰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처럼 다양한 이슈가 뒤엉켜 갈팡질팡할 때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길잡이, 억울한 피해자를 돕는 신문고,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감시견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히 자리매김했는데, 이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지역성의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단위로서의 지역거점 방송 보다는 구조조정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금의 KBS 통폐합 추진은 중단돼야 한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인 방송이 지역의 목소리, 생활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특정 지역 소식으로 편식되는 것을 원주시민들은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편식이 지나치게 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 DNA’를 올곧게 지켜나갈 때 신뢰재(信賴財)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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