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살며 사랑하며]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임길자
  • 승인 2020.02.14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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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인간은 아무리 잘나고 가진 게 많아도 혼자서는 살수 없다는 것을 가장 간결하게 함축시킨 말입니다. 서로 부비고 어우러져 함께 살아갈 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 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옛날 어느 집안에 혼례가 있어 많은 친척들과 친구들을 초대했습니다. 주인은 가장 똑똑한 하인을 불러 말했습니다.

“혼례에 참석한 하객이 몇 명이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아라.”

하인은 하객들이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대문 입구에 둥근 받침돌을 옮겨 놓고 그 옆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하객이 몇 명이나 나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혼례가 끝나갈 무렵, 하객들이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 안쪽에서 나오는 하객들은 받침돌을 미처 보지 못하고 나오다가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고 욕을 하며 돌아갈 뿐 누구 하나 뒷사람을 위해 돌을 옮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나오던 한 노부인도 결국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녀는 달랐습니다. 옷을 털고 일어나더니 받침돌을 정원 한구석으로 옮겨놓았습니다.

하인은 혼례가 끝나자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나리, 하객은 노부인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하인의 대답에 주인이 의아해 하며 물었습니다.

“그럴 리가. 네가 잘못 본 것이 아니냐? 얼핏 봐도 하객들이 많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사실은 제가 대문 입구에 둥근 받침돌을 놓고 그 옆에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고 투덜대기만 할 뿐 아무도 돌을 옮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노부인 한 분만이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질까 봐 돌을 대문 밖 한구석으로 옮기더군요. 제 눈에는 그 노부인 한 분만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쉬운 일을 하지 않고 불평만 한 셈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면 키가 큰 사람들이 머리로 받칠 테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급속한 경제발전은 물질만능주의를 만연케 했고,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은 ‘나’, ‘내 자식’, ‘우리 식수’에게만 집중하도록 이기주의를 키웠습니다. 양심의 부재는 도덕적 해이를 낳았고, 희망의 싹이 되어야 할 나눔과 배려는 현실을 건조하게 했습니다.

과거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전쟁터에 먼저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자 평민들도 자연스럽게 자식들을 전쟁터에 보냈다고 합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자식을 보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국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기에 귀족들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지요.

도덕과 양심이 시든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병든 사회에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기부를 통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지식과 재능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재능 나눔을 실천해야 세상은 녹록해 집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 및 의료계 그리고 약간의 갈등은 있었으나 끝내는 흔쾌히 마음을 내어 준 아산, 진천, 이천 지역주민들 덕분에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듯싶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던 한 젊은 영화감독의 영화가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소식에 온 세계가 떠들썩 했습니다.

최근의 이 두 현상들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힘의 한계와 경계를 봅니다.

사람들은 지구라는 큰 공간 안에서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갑니다. ‘함께’라는 공동체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법과 도덕이 있고 인간적인 양심과 에티켓이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지도층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을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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