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98번째 아쉬운 생신잔치
[살며 사랑하며]98번째 아쉬운 생신잔치
  • 임길자
  • 승인 2020.03.15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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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들판에선 새싹들의 기지개로 풋풋한 생명의 향기가 피어오르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며칠 전 임◯◯님께선 98번째 생신을 맞으셨습니다. 가족이라곤 유일하게 서울에 사는 손자뿐인데, 그가 할머니 생신을 위해 시설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면서 시설에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 했습니다. 임◯◯님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기에 손자의 마음은 더 간절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그의 가족방문을 거부했습니다.

생신날 아침! 시설 직원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담아 생신 상을 차리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직은 인지가 명료한 임◯◯님! “손자가 오지 않아 서운하긴 하지만 전화통화를 했으니 됐지 뭐.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생일이 뭐라고. 다 괜찮아. 그런데 내년에도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래나?” 어르신과 직원들은 울고 웃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얼룩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전염병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원인을 모른 채 가족과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고통이고 두려움이었습니다. 더욱이 상대를 모르는 싸움인지라 더 무섭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 박쥐를 먹는 중국인 풍습 때문이라며 중국인을 비하하고 전면 입국 금지하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가 이어졌습니다. 집단 발병 원인이 된 종교단체 신천지에 대한 비난에 이어 특정 지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발원지인 중국으로부터 입국자에 대한 검사를 철저히 할 필요성은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아 국내 집단 감염 발원지가 된 신천지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한 종교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이고, 부모자식이고, 친구이고, 동료였을텐데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기심은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겁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가 위기라고 생각됩니다. 위기상황에서 드러나는 우리 모습은 공동체 의식 수준입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인 마스크를 수십만장 사재기해 품귀현상을 빚게 한 업체가 적발되었습니다. 공포심을 부추기는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도 나오고, 자가 격리 수칙을 어기고 바깥활동을 한 확진자들도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먼저 뛰쳐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웃과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지지 속에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전국 선별진료소와 병원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대구를 향해 비난이 아닌 마스크와 생필품을 보내는 손길부터 일상을 유지하면서 감염예방 수칙을 꼼꼼히 실천하는 시민 모두가 공동체를 지키는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지는 그 공동체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그리고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됩니다.

인류는 진화하는 과정에 동거하듯 살아온 바이러스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70억 인구가 지구 공동체에 모여 살고 있고 국경없는 자본주의 산업체계는 더 큰 전염병 위험을 부릅니다. 위기상항에서 힘 있고 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시장경쟁 논리가 공동체를 지배한다면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전염병은 강자보다 약자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같은 바이러스라 해도 영양상태가 나쁘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더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희생자 대부분이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모든 사회복지시설들은 날마다 긴장의 연속입니다. 양보와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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