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투표소 가는길…뇌리를 가득 채운 ‘생각목록’
[비로봉에서]투표소 가는길…뇌리를 가득 채운 ‘생각목록’
  •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 승인 2020.04.12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10일 오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시청로를 따라 투표소인 반곡관설동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수채화처럼 길게 이어진 벚꽃터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마치 가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처럼 대지를 하얗게 물들여 눈이 부셨다. 사흘 뒤 당락에 내심 노심초사, 애가 탈 후보들은 이런 절정의 정취를 만끽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도장을 찍으려니 한 후보의 이름이 선명하게 망막에 파고들었다.

‘벚꽃대전’의 월계관은 과연 누가 쓸까. 집으로 배달된 공보물을 보면 각 후보들이 내놓은 원주시 밑그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공약은 지역의 미래 성장점과 궁합이 맞는지, 공부하고 연구한 끝에 내놓은 실현가능한 것인지, 특히 급조되거나 남의 공약을 흉내 낸 공약은 아닌지 요모조모 따져보자. TV토론을 통해 몇몇 후보들에게서는 미래까지 설계하는 혜안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허물 들추기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면서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상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을 한 방 없이 구닥다리 녹화테이프를 재생시킨 것처럼 가벼운 잽만 날린 느낌이랄까.

이제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는 일부 현안을 둘러싸고 고리타분한 찬·반, 극단적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정쟁으로 얼마나 날밤을 샜는가. 지금까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같았다면, 앞으로는 이견을 조율, 조정하고 지역의 역량을 한데 모아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안내하는 미래의 나침판 같은 인물이 선택돼야 한다.

‘장일순 평전’(김삼웅 지음)에는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장일순 선생을 ‘20세기를 산 21세기형 인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맞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투시하는 선경지명을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 일부 논란이 된 현안에 대해 어떤 후보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지레 경계심을 드러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게 법을 만드는 정치인의 능력 아닐까.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고 하기 전에 지역 공리(公理)를 위해 불가능에 과감하게 맞서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미래는 온통 회색빛이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을 통해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상황이 일각(一刻)에 닥쳐올 수 있음을 온몸으로 겪었다. 전시상태처럼 우리 삶을 완전 뒤바꿔 놓았고,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라 집에 꼭꼭 숨겨놓고, 수많은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다. 불안전성,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전쟁의 양상, 이를테면 강대국들이 갖가지 첨단무기를 동원한 재래식 전쟁, 그리고 자원을 무기로 한 자원 전쟁, 상대국 제품에 관세폭탄을 매기는 무역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경제는 나약하게 휘청거리는 것을 자주 봐왔다.

사정이 이럴진대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루면서 피해가 우리 사회전반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확성기처럼 들리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에 버금가는 괴물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일발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15일 저녁, 원주시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뽑히게 된다. 당선자는 시민의 얼굴이다. 미래는 현재가 결정한다고 했다. 자신의 비전에 헌신하고, 시대를 앞서 나가는 안목 있는 후보만이 지역의 창창(蒼蒼)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풍전등화의 위기상황, ‘빛의 시대’에 변화를 분석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추진력 있는 리더십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인물의 넓이와 깊이에 주목하자. 아날로그 리더십으론 전진은 커녕 자칫 뒷걸음질, 또는 제자리에서 맴맴 돌 수밖에 없다.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너무 힘에 부치고 벅차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제대로 보고 후회없이 정확하게 찍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