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참꽃
[세상의 자막들]참꽃
  • 임영석
  • 승인 2020.05.16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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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시인>
△임영석<시인>

세상 여기저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럼에도 그 꽃에 애증이 묻어있지 않고, 사랑의 눈빛으로 다가설 수 없는 마음은 왜일까 싶다. 공원이나 도로변에 심은 꽃들은 꽃의 모양만 아름답게 피어서 인위적이고 가공된 느낌이 너무 강하다. 꽃의 모양만 너무 보이기 위해 개량된 꽃이다 보니, 막 공장 프레스에서 수없이 찍혀 나온 인위적인 꽃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연 속에서 고즈넉이 바라보고 느끼는 여백이 없다. 강렬한 빛의 현옥에만 앞세운 나머지 꽃이 사람에게 들려주어야 할 여백이 없다. 마치 장맛비에 강물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어릴 적에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불렀다. 봄이면 참꽃을 꺾어다 주면 어머니는 꽃잎을 따서 떡 위에 놓거나, 화전을 붙여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이야 먹거리가 넘치고 넘쳐 골라 먹어도 남는 시절이니 그 맛을 가름하기 힘들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대이니 무엇이라도 먹을 것을 해주기 위해 만든 음식이 꽃을 이용한 화전과 떡이었다. 무릎이 헤지고 발가락이 다 나온 양말을 신고 다녔어도 마음만큼은 참꽃처럼 아름답게 자라도록 어머니는 늘 나를 다독여 주었다.

그 어릴 적 처음 손에 잡아 본 시집이 1971년 발행된 오행자 편저 ‘물망초’라는 시집이었다. 그 당시 가격이 250원이다. 김소월 시를 중심으로 세계 명시, 국내 명시를 담은 시집이다. 이 시집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봄이면 진달래꽃을 수없이 읽고 읽었다. 참꽃을 꺾으면서 김소월 시인이 왜 그렇게 시를 썼을까 생각하고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소월의 마음 근처에 가지 못했다는 생각뿐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영변에 약산 / 진달래 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 꽃’ 전문

철쭉꽃이나 영산홍 꽃은 색이 짙고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지만, 참꽃은 그 꽃이 주는 여백이 오랜 시간 우리들 삶의 정서를 깊이 품어낸 마음의 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그리고 인위적이지 않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자유로움과 고고함의 이상을 모두 지닌 그런 꽃으로 보인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참꽃을 그림으로 그렸고, 글로 말해 왔다. 그럼에도 참꽃 그 자체를 직접 보아야 느끼는 그 이상의 그림이나 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참꽃이 우리들 삶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마음의 위로와 삶의 진실을 간직하게 한 꽃이라고 생각한다.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산들이 몇 군데 있다. 창원 화왕산, 강화 고려산 진달래꽃은 어느 산보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두 곳의 진달래꽃은 마치 하늘 아래 꽃방석을 깔아 놓고 신선과 선녀들이 놀다가 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아름답다. 물론 다른 산들의 진달래꽃도 아름답다. 그러나 뒷동산에 올라가 참꽃을 꺾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뒷동산이 개발로 인하여 사라져 없다 보니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본다.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아이에게 참꽃이라는 꽃은 이제 뒷동산에서 보는 꽃이 아니라 높은 산을 올라야 보는 꽃이기도 하다.

그간 쉽고 편하게 경제적 가치만 내세워 꽃을 심고 가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정서에 가득 담겨 있는 참꽃을 철쭉이나 영산홍, 그리고 다른 나무들처럼 묘목을 키워 내는 방법을 왜 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묘목을 번식시키고 키우는데 어렵고 쉽지 않아 경제적 이득이 없어서 멀리했다는 추측은 간다. 그럼에도 개발로 삭막하게 변해 있는 아파트나 도로, 공원의 조경수들을 보면 시민의 정서와 관계없는 꽃들이 일률적으로 심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참꽃이나 방울꽃, 붓꽃 같은 우리들 정서에 가득한 꽃들이 사라지고 있어 아쉬운데, 우리 꽃을 지켜내는 자부심으로 참꽃도 조경수로 가꾸어져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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