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발표저널리즘
[비로봉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발표저널리즘
  • 심규정
  • 승인 2020.05.31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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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원주시가 1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약속을 어기고 8만 원만 지급하고 2만 원은 지급하지 않았다는 통합당 시의원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원주시는 정부 방침에 따라 10만 원 가운데 2만 원을 정부 재난지원금에 얹혀 모두 지원했다. 단언컨대 시의원들이 저간의 사정을 몰랐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고, 알면서 그랬다면 후진적 정치공세다. 한여름도 아닌데 시민들의 불쾌지수만 끌어올렸다. 시민들은 “시민들을 바보로 아는 거지”, “그렇게 할 일이 없는지”, “코로나19로 가슴 졸이며 살고 있는데 정말 화딱지난다”, “이게 지역의 정치 수준”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원창묵 시장(원주시)이 2만 원을 빼앗았다는 주장에서는 솔직히 귀를 의심했다. 재난상황에서 돈과 관련된 문제는 인화성이 높은 이슈다.

이 논란을 접하면서 ‘발표’라는 단어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원창묵 시장이나 통합당 의원들은 그간 시차를 두고 시청 브리핑룸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굵은 저음의 바리톤 음성으로,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이 뉴스는 주요 헤드라인으로 보도됐다. 사실상 일상이 파괴되고 시민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화급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대책을 내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시는 코로나19 여파로 온 나라가 사실상 정지화면처럼 되면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는 상황이었다.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코로나19 뉴스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뉴스 가치판단 기준인 시의성, 중요성, 특이성, 집단성, 확산성, 흥미성 등을 골고루 갖췄으니 언론은 호재를 만났다. 결국 이번 재난지원금 논란은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됐고, 화근 덩어리는 ‘발표’였다.

언론의 그릇된 보도행태를 빗댄 수식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발표저널리즘’이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취재원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관행을 말한다. 일본 언론인 하라 토시오가 처음 사용한 이 개념은 저널리즘, 특히 언론윤리를 논할 때 학자들 사이에 자주 거론된다. 여과 없이 중계한다고 해서 ‘받아쓰기 저널리즘’, 특정 정파 또는 이해집단의 주의·주장을 무분별하게 대변한다고 해서 ‘해바라기 저널리즘’, ‘폭로저널리즘’으로도 불린다.

언론학자들은 이 같은 발표저널리즘이 취재원의 의도에 따라 언론이 휘둘릴 수 있다는 점, 진실 전달보다는 앵무새처럼 취재원의 주장을 중계하는 데 그쳐 시민들을 더욱 혼란케 한다는 점, 특히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정치공세는 방송이나 신문이라는 성능 좋은 확성기를 타고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이 과정에서 언론은 면밀히 따져 봐야 했다. 과연 저들의 주장은 정당한 문제 제기인지, 지원금 지급방식의 법적 근거는, 정부 방침은 무엇인지, 시의회 의결절차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 과정에서 통합당 의원들은 어떤 스탠스를 취했는지, 이리 되작, 저리 되작 스크린했어야 했다.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팩트의 조각을 얼기설기 맞추다보면 진실과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모든 언론이 다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도 한때 기계적 중립에 집착해 한쪽에서 이렇게 주장했는데, 다른 쪽에서 이렇게 해명했다는 식의 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기계적 중립은 결코 공정이 아니다. 잘못된 알 권리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고, 일종의 죄악이다.

결국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내뱉은 말은 흉기가 되어 원 시장에게 어느 정도 상처를 입혔을 지 모른다. 그러나 본전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중요 덕목인 신뢰라는 큰 자산을 까먹었다. 사실보다는 거짓을, 공익보다는 허울좋은 진영논리에 매몰돼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것은 층간소음보다 더한 소음이다. ‘아니면 말고식’ 주장을 했으니 따끔하게 질책받아야 마땅하다. 시대가 바뀌면 구각을 깨야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먼나라 이야기 같다. 지역 정치인들의 품격이 시민 눈높이에 맞게 좀 더 세련되길 바라는 것은 백년하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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