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권정남 作 / 내 안의 코끼리
[시가 있는 아침]권정남 作 / 내 안의 코끼리
  • 임영석
  • 승인 2020.05.31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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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코끼리

-권정남 作

 

내 몸 안에 코끼리가 웅크리고 있다
끌어내려고 비스킷으로 유혹해도
부채 같은 큰 귀만 펄럭 일 뿐
씨름 하듯 코를 당기면 조금 끌려 나오다가
다시 자라목처럼 들어간다
긴 코를 당기는 손바닥이 굳은살 투성이다
가끔 등을 쓰다듬어주며
거미처럼 코에 매달려 나는 즐기기도 했다
내 안에 코끼리는 고집이 세다
밤마다 끌어내려고 해도 긴 코는 미동도 않는다
새벽에 눈을 뜨면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다
세상 밖으로 끌려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버리는 내 몸 안의
슬픈 코끼리

 

2020년 시와 소금 테마 시집 ‘코’에서

사람의 몸, 어느 한가지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럼에도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주는 이미지는 사람의 전체를 대신 말을 한다고 해고 과언은 아니다. 귀와 눈과 입과 코, 귀는 듣고, 눈은 보고, 입은 말하고 먹고, 코는 냄새를 맡고 숨을 쉬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그 역할이 보통의 역할이 아니라 사람 삶의 중심을 이루어내는 일을 맡고 있는 것이다. 코에 대한 테마 시집에 여러 시인들이 경험한 코에 대한 시들을 읽다가 권정남 시인의 시 한편을 읽어본다. 사람의 마음 안에도 코끼리 코와 같은 마음의 코가 있고 부채만 한 귀가 있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 긴 코를 당기고 보살피기 위해 손은 굳은살이 껴야 했고 세상 밖으로 그 긴 코를 꺼내려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코를 꺼내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삶을 살아가려면 온갖 세상의 냄새를 맡아야 하고, 걸려내야 한다. 그리고 숨을 쉬며 목숨을 지켜내야 한다. 때문에 일생을 그 코 끝에 길들어진 삶의 냄새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그 사람 많이 맡는 냄새의 취향이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삶의 방향을 따라가는 길도 다 다르다. 매운맛, 달콤한 맛, 고소한 맛, 신맛, 구린 맛, 맛이란 맛들이 코를 자극해도 코는 그 냄새들을 정확하게 알아내 혀의 감각으로 이동시켜 준다.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보다 더 정확한 협동심도 이해심도 단결심도 없을 것이다, 이목구비가 주는 삶의 조화보다 더 조화로운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코는 냄새로 삶의 독을 걸러내주고 맛을 이끌어 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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