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원주판 ‘씨씨 허니컷 구하기’ 확산되길
[비로봉에서] 원주판 ‘씨씨 허니컷 구하기’ 확산되길
  • 심규정
  • 승인 2020.06.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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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베스 호프먼(Beth Hoffman)의 소설 ‘씨씨 허니컷 구하기’를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던 한 소녀의 어두운 가정사를 배경으로 출발하지만, 결과는 소녀의 성공적인 성장기를 그리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핵심 플롯은 이렇다. 7살 씨씨의 집은 지옥 같다. 정신증을 앓고있던 엄마는 발작 증세를 보이면 온갖 물건을 집어던져 집안은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이럴 때마다 씨씨의 머릿속에는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린다. 공원으로 도망치거나 화장실에 처박혀 눈물로 지내는게 일상이다. “제발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고 되뇌기까지 했다.

과거 젊었을 때 ‘양파 여왕’출신인 엄마는 왕관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드레스를 입은채 거리를 우아하게 거닐곤 해서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놀림감이 된 씨씨는 점점 외톨이가 된다. 트럭운전사인 아빠는 가뭄에 콩 나듯 집에 들른다. 사실상 엄마와 단둘이 사는 씨씨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엄마를 홀로 케어하는 것은 천근만근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 왕관 그 드레스의 모습으로 거리를 거닐던 엄마는 갑자기 달리던 트럭에 뛰어들어 씨씨 곁을 영원히 떠났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씨씨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룬 아빠는 결국 씨씨를 멀리 떨어진 이모 할머니 집으로 보낸다. 산산조각 난 가족, 모든 게 낯설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씨씨는 이모 할머니의 자상한 보살핌과 주변 어른들의 도움으로 마음속 깊숙히 웅크리고 있던 유기불안과 트라우마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날이 갈수록 보석같은 존재로, 인생역전을 일궈 나가는 씨씨의 모습에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씨씨의 사례는 우리나라 위탁가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위탁가정은 친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에 놓이면 친인척 또는 다른 가정에서 대신 보호해주는 제도다. 위탁가정을 세분화하면 할아버지·할머니 양육위탁, 친인척위탁, 일반위탁으로 나뉜다. 씨씨의 이모 할머니는 위탁모, 씨씨는 위탁아동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위탁가정에는 생계비, 교육비, 의료비가 지원된다. 18세 이상에게는 자립지원금은 물론 대학 재학시 지원이 연장될 정도로 지원시스템이 촘촘하다. 현재 도내에 900여명의 위탁아동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씨씨의 경우 처럼 간혹 성공사례도 전해져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상지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김모씨(25)는 부모의 이혼, 그리고 아빠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고교시절부터 위탁가정에 선정됐다.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와 함께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심리적으로 예민한 청소년기, 김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경야독 끝에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지금은 공기업 입사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모든 공을 할아버지에게 돌리는 김씨는 말한다. “저의 성장과정을 비관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저를 단련하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 사례를 보면 친부모의 형편이 나아져 다시 부모품에 안기는 위탁아동도 있다고 한다. 허나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정에 굶주리는 위기 아동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년소녀가장이 되거나 사회복지시설로 보내져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은 더 넓고 크고 깊다. 지금 우리사회는 고령화율이 극단적으로 치솟고 있다. 씨씨가 팔순이 넘는 이모할머니의 생생한 경험과 고색창연한 지혜의 말을 통해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갔 듯, 노인들을 위탁부모로 잘 활용하면 의외의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복지천국’ 핀란드처럼 요람이 아닌 ‘태아에서 무덤’까지 복지를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촘촘한 복지 그물망을 갖춰 나가는 상황에서 한참 성장기에 있는 위탁대상 아동,청소년이 올곧게 자라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절실하다. 제2, 제3의 씨씨 허니컷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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