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치악산 황톳길을 걸으며
[세상의 자막들]치악산 황톳길을 걸으며
  • 임영석
  • 승인 2020.06.14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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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요즘 들어 나는 치악산 둘레길을 황토를 깔아 새롭게 만든 황톳길을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원주에서 가장 원주다운 모습을 치악산을 통해 만들어낸 걸작으로 뽑고 싶다. 너무 인위적이지도 않고 사람과 자연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함께 호흡을 하게 만들어 시민의 품에 안겨 주었다는 것은 크게 자랑하고 칭찬하고 이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들이 더 지극정성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지켜가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간 나는 원주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원주가 원주답다는 것에 인색했다. 그러나 치악산 소나무 숲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황토를 깔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자연적 공간을 잘 활용하면 자연이 풍겨주는 그 품격 하나로도 멋지고 근사한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간 몇 번의 해외여행 중에 마주한 풍경들을 보면 자연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한 모습이 부럽기만 했었다.

원주에는 몇 개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공원들은 모두 자연의 모습을 흉내 낸 인위적인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쉼터가 조성되지 않아 보였다. 30년 전 정완영 시인과 서울 근교 관악산 소나무 숲을 함께 걸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선생은 당시 60전후의 나이에 글을 쓰시다가 틈틈 소나무 숲에 와 마음의 벗을 만나고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蓮과 바람’이라는 시조집을 주셨다. 이 숲의 바람이 세상을 거느리고 세상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교실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나는 30년 전 걸었던 솔숲의 학교에 다시 입학해 소나무들이 들려주는 무한한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삶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졌다고 본다. 당시 정완영 선생의 시조 작품 ‘연과 바람’의 마지막 수를 읽어보기로 한다.

〈앞 네 수 생략〉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며
바람에 인경 소리를 실어봄 즉 하잖은가.

정완영 作 ‘蓮과 바람’ 마지막 수

나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나무는 소나무로 살아가고, 갈참나무는 갈참나무로만 살아간다. 사람의 세상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진리가 숲에서는 질서 있게 바라보고 느낄 수가 있다. 그러한 삶의 공간을 치악산 황톳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가장 원주다운 치악산의 아름다움을 활용하여 그 아름다운 아름다움의 미를 완성한 걸작으로 나는 뽑고 싶다. 솔직히 소금산 출렁다리에 비해 원주 치악산 황톳길 조성은 진정한 원주 시민을 위한 원주 시민의 마음을 헤아려 만든 그런 일로 치부하고 싶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사색을 할 만큼 깊은 품위를 지니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나 다가설 수 없는 그런 위험을 노출하고 있다. 그에 비해 치악산 소나무 숲에 만들어진 황톳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원주 시민이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일상의 거리를 숲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둘레 길에 접근하는 접근성을 개선했으면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의 불편함은 크게 없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다가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많은 시인과 지인들에게 치악산이 한층 더 치악산 다워졌으니 다녀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아름다운 황톳길을 만든 원주시에 감사를 드리고 늘 그 황톳길 위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소나무들과 주고받으며 걷는 재미가 너무나 좋다. 이 푸른 소나무가 내게 새로운 삶의 길을 내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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