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정연홍 作 / 이소
[시가 있는 아침]정연홍 作 / 이소
  • 임영석
  • 승인 2020.06.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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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 離巢

-정연홍 作

 

최초의 비행은 바람을 만지면서 시작된다
낮은 곳엔 바람이 오지 않으므로 새들이 바위로 오른다
날개를 활짝 펴고 흔들어야 비로소 바람이 온다

생의 첫 바람을 만져 보는 근육 안쪽
팽팽한 긴장으로 살이 떨린다
아직은 바람이 연약하다
날개를 퍼득이면
비로소 바람의 근육이 선다

한 무리의 바람이 몸을 밀어 올려 주는 순간
날개는 바람을 품고 하늘과 평행이 된다
바람을 밟고 하늘에 오르면
허공은 모두 내 것이 된다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날개를 펼 수 있다
바람의 뼈를 놓치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새는 바람의 주인이다

바람은 새를 모시려고 우우 운다

 

정연홍 시집 ‘코르크 왕국’, ‘파란’에서

 

 

이소(離巢)라는 말은 새가 집을 떠난다는 말이다.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새가 둥지를 떠나는 모습을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정연홍 시인의 시집 ‘코르크 왕국’은 동물에 관련한 시들이 많다. 동물들의 삶을 통해 사람의 삶과 비교를 하였던지, 아니면 사람 삶이 동물처럼 극박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읽어보는 시 ‘이소(離巢)’는 새가 첫 비행을 하며 느끼는 두려움,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을 심리적으로 묘사를 해 놓은 시다. ‘바람의 뼈를 놓치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라는 것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지 않으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람이 새를 모시려고 운다고 말한다. 새가 날개를 퍼득이는 순간부터 그 허공은 새들의 것이 된다. 사람도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고부터 두 발 닫는 곳이 다 길인듯 하며 걷는다. 비단 새들만 이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밥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 일을 한다. 그들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허공인 셈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삶에서는 허공 같은 세상을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새들이 떠나 날아가는 허공은 새들의 것이라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의 세상은 그런 따뜻한 품이 없어 보인다. 새가 날기 위해 수만 번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의 공포를 이겨내야 이소를 한다고 한다. 모든 삶이 다 그 첫 두려움의 공포를 떨쳐내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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