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아파트 이름에 대하여
[세상의 자막들]아파트 이름에 대하여
  • 임영석
  • 승인 2020.06.27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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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요즘은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지어지면서 산과 지역을 중심으로 부르던 마을 이름들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도로명 주소로 바뀌다 보니 옛 지명에 대한 기억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마을과 마을마다 전통과 관습이 있고, 삶의 특징이 있었지만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으로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관습과 마을마다 내려온 전통적 문화도 보존되고 계승되는 것 외에는 다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파트 이름을 보면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전국에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무슨 시리즈 형태로 지어지고 불러지고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의 주거 환경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은 시공사에서 서울 부산 대전 원주 등에 아파트를 지었다 해도 아파트 브랜드 이름이 우선시되다 보니 번지수나 도로명은 보조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전국이 아파트 브랜드 위주의 이름으로 도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인협회 주소록에 기록된 아파트 명을 지역 구분 없이 열거해 보기로 한다.

〈아너스빌, 주공아파트, 신시가지아파트, 호반가든하임, 신원 아침도시, 베르빌아파트, 백합아파트, 샘마을 한양아파트, 삼환가락아파트, 진흥아파트, 경동아파트, 위브어울림아파트, 목련아파트, 동서무학아파트, 그린타운아파트, 풍림아이원아파트, 아이파크아파트, 그린아파트, 푸르지오아파트, 코아루아파트, 샘머리아파트, 건영아파트, 자이아파트, 현대아파트, 베스트아파트, 리센트아파트, 한성아파트, 월드메르디앙아파트, 상떼빌아파트, 우성아파트,  신원아파트, e편한아파트, 이안아파트, 동성아파트, 칸타빌아파트, 대림아파트, 힐스테이트아파트, 선경아파트, 롯데캐슬아파트, 보배아파트, 삼성레미안아파트, 센트럴파크하이츠아파트, 그랜드아파트, 벽산부루밍아파트, 동원베네스트아파트, 은빛마을, 다숲아파트, 부영그린타운, 두진하트리움시티, 마젤란아파트, 더샵 엑스포, 푸른숨LH, 블루밍더클래식, 참누리아파트, 한신휴플러스, 한라비발디아파트〉

전국적으로 참 많은 아파트 브랜드명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마경덕 시인은 ‘집들의 감정’이라는 시에서 “생각이 많은 아파트는 난해한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금이 가고 소음이 오르내리고 물이 새는 것은 / 집들의 솔직한 심정, / 이제 집은 슬슬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다”라는 표현을 했다. 집이라는 것이 감정을 가져 비싼 집, 싼 집, 부의 축을 바라보는 시발점이 되다 보니 투기의 목적이 되어 있다. 어느 정부나 부동산 대책에 골몰하는 이유다. 일반 직장 노동자가 급여를 받아 집을 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간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파트 이름만 보면 어렵고 복잡하고 한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딴 나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글을 사용하자는 말은 한글날 하루뿐인 듯싶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사람이 되었건 건물이 되었건, 동물이 되었건 사라지기 전까지는 불러지는 것이다. 얼마만큼 우리가 우리 한글이름에 소홀하고 외면하고 있는지는 아파트 이름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건설사들은 좀 더 근사하고 풍격 있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는 이름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문의 이름을 붙이면 그 뜻이 더 품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영문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본다. 국민 취향을 자격하다 보니 한글이라는 훌륭한 글을 우리 실생활에는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파트 이름들이 우리 생활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면 확연하게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아이들이 태어나서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을 기억할 것인데, 스테이크, 위브, 더 샾, 비발디, 베르빌 등의 이름만 기억할까 두렵다. 나는 내 마음에 한글이 대한민국 국보 1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불에 타 재건한 숭례문보다는 한글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아파트 이름을 지을 때 건설사들도 우리 한글사랑이 깃든 이름을 사용하고 많은 시민들도 한글에 대한 애정을 일상생활에서부터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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