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보건소를 질병관리본부 직할로 두자고...
[비로봉에서] 보건소를 질병관리본부 직할로 두자고...
  • 심규정
  • 승인 2020.06.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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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코로나19가 이제 일상다반사가 된 느낌이다. 애초 꽃피는 봄 소멸설이니, 여름 소멸설이니 희망적인 예상이 많았지만, 지역에서는 최근 이레 동안 3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을 아연 긴장케 하고 있다. 확진자인 안산 거주 보험컨설턴트가 다수의 보험설계사를 상대로 교육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신천지의 경우처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다른 지역을 오가며 코로나19라는 불행의 씨앗을 남긴 것이다.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이 확인됐다. 시민들은 기세등등한 코로나 19에 핸드폰 진동이 울리듯 부르르 몸서리치고 있다.

한때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꺾여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전환되면서 일상으로 원점회귀하는 듯 했다. 독안에 든 쥐처럼 집에서 사상 초유의 비대면 수업을 받던 아이들은 정상 등교했다. 매출감소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인 자영업자들은 경기 회복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일상을 시샘이라도 하듯, 코로나19의 산발적인 습격,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무쌍한 발병세를 종잡을 수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간 ‘시간이 약이다’거나 ‘이젠 소멸됐을 거야’라는 미미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때문에 코로나19의 절멸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감기처럼 늘 끼고 살아야 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아직 경계를 풀기엔 시기상조다.

이런 상황에서 일선 보건소를 보건복지부나 앞으로 승격되는 질병관리본부 직할로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제2, 제3의 감염병 대유행에 맞서기 위해서는 중앙-지방조직의 일사분란한 지휘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구체적인 조직 개편의 방법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같은 주장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질병관리본부-일선 보건소는 방역대책, 환자 관리 등 코로나19 대응에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감염병은 지역 환경. 공동체와 연관성을 갖는 만큼 발병·전파·차단 등 모든 과정이 주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지역마다 특성과 처한 환경이 다르다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 산하로 전환된 보건소가 지역에서 단독으로 기능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 여러 부서와 유기적인 협조 아래 인력, 재정이 함께 투입되어야만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조직으로 편입되면 중앙과 지방간 의사소통과 업무 진행 절차가 복잡해서 제대로 된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비례대표)이 대표 발의한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다행히 보건소를 질병관리청 관할로 둔다는 내용은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국회 논의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일부에서 군불 지피기 하듯 여론전을 펼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을 수 없다. 대단히 유감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고 WHO는 규정했다. 각종 전염병의 즉시성, 이동성, 맹위성, 이로 인한 재앙의 크기에 비춰볼 때 지금처럼 지역 보건인력의 고군분투만 가지고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각종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중보건의료의 모세혈관 격인 보건소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 역학조사원 등 감염 인력의 확충, 전문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감염병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현령비현령식의 논쟁이자 패스트푸드식 접근법이다. 이런 논란이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애먼 지역보건 인력을 맥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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