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윤동주 作 / 돌아와 보는 밤
[시가 있는 아침]윤동주 作 / 돌아와 보는 밤
  • 임영석
  • 승인 2020.08.0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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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空氣를 바꾸어 들여야할텐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눈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6)

 

이건청 편저 윤동주 평전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문학세계사’에서

 

 

지금이나 예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신중하고도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941년 6월이라는 때를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윤동주 시인은 시를 일기처럼 써 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온다는 것은 휴식을 취할 방에 들어와야 비로소 안락한 시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불을 환히 밝혀 두면 낮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불을 켜고 낮을 연장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이 많았을 것이다. 방에 들어와 창을 열고 공기를 순환시켜 주면서도 밖의 길을 보니 길이 비에 젖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오고 갔지만, 결국 길 혼자 남아 어둠의 모든 것을 껴앉고 홀로 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의 울분이 씻을 바 없어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스스로 결정하고 그 적합성을 따지는 것이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 사상이 가슴에 눈금처럼 저절로 익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아마도 세상의 모순점이 많음을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으로 본다. 먹고 즐기는 것에만 정신없이 살아도 부족할 나이의 윤동주가 고민했던 것은 방 안에 들어와도 불을 켜면 낮의 연장이라는 것, 그리고 비에 젖은 길이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고 빗속에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아픔을 생각하는 윤동주의 마음은 어두운 밤도 괴로움을 잊기 위한 어둠이었다고 느껴진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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