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동순 作 / 아우라지 술집
[시가 있는 아침]이동순 作 / 아우라지 술집
  • 임영석
  • 승인 2020.08.1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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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술집

-이동순 作

 

그 해 여름 아우라지 술집 토방에서
우리는 경월소주를 마셨다 구운 피라미를
씹으며 내다보는 창밖에 종일 장마 비는 내리고
깜깜한 어둠에 잠긴 조양강에서
남북 물줄기들이 서로 어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염이 생선가시같이 억센
뱃사공 영감의 구성진 정선아라리를 들으며
우리는 물길 따라 무수히 흘러간
그의 고단한 생애를 되질해내고 있었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지만
-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치지요

한 순간 노랫소리가 아주 고요히
강나루 쪽으로 반짝이며 떠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흐릿한 십 촉 전등 아래 깊어 가는 밤
쓴 소주에 취한 눈을 반쯤 감으면
물 아우라지고
사람 아우라지고
우리나라도 얼떨결에 아우라져 버리는
강원도 여량 땅 아우라지 술집

 

이동순 시집 ‘그대가 별이라면’, ‘시선사’에서

 

 

국어사전에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 모이는 곳”이라 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이야 천금을 주어도 하나로 엮일 수 없지만 자연의 이치로 흐르는 물줄기는 가로막아도 그 처지를 어떻게든 뚫고 흘러간다. 요즘 장마로 이곳저곳에서 물난리를 겪지만 물난리를 겪는 그 이면에는 사람의 과욕이 자연의 흐름을 막고, 자연을 점령해 살고자 하는 삶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동순 시인의 시 ‘아우라지 술집’을 읽으면서 이제는 그 흔적조차 가름하기 힘들게 사라진 것이 아우라지 술집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의 왕래에 따라 생겼던 것이 술집이고 잠을 재웠던 곳이다. 그러나 그런 삶의 길목이 자동차가 생기고 고속의 교통수단이 생기며 사라졌다. 정선 아라리의 노랫말에도 품어졌지만 “사발 그릇 깨지면 두세 쪽이 나지요. / 삼팔선이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치지요” 정선아라리 가사의 끝부분이다. 아라리가 구전으로 내려온 노래이고 보면 근대에 와서도 그 아라리의 구전은 변하고 변해서 우리들 삶의 애환을 물살처럼 묶어 흘러왔음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말들은 침묵을 통해 이어지는 기나긴 삶의 흐름이라고 본다. 물난리를 겪는 요즘, 자연은 사람에게 그만큼 많은 말을 참고 참으며 인내해 왔다고 본다. 그 말을 장맛비가 겨우 한 토막 말을 들려줄 뿐이라는 생각이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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