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조성식 作 / 호미
[시가 있는 아침]조성식 作 / 호미
  • 임영석
  • 승인 2020.08.23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미

-조성식 作

 

불구덩이에서
우려낸 굽은 몸이다
쪼그려앉은 자세로
남의 밭에 풀을 진종일 찍어내는
어머니의 손끝에 살고 있는 딱따구리다

두엄간에서 쉬는 날이면
두엄 썩어가는 냄새가
어떤 행수보다
더 정겹다

어머니 손 닮아
낮은 사람들을 안으로 안으며
세상을 캐고 있는 호미

 

계간 ‘시에’ 2020년 가을호에서

 

 

요 근래 읽은 시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프고 그리고 가장 감동을 가져다 준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화려한 수식이나 묘사도 몇 없다. 그러나 어머니 손끝에 사는 딱따구리이고, 두엄 썩어가는 냄새를 어떤 향수보다 깊이 맡고 사는 삶, 그리고 낮은 사람들을 안으로만 굽어살피는 삶, 이 사랑이 시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큰 삶을 살며 세상을 지탱한 어머니 같은 호미도 세상의 물정에 자꾸 힘을 쓰지 못한다. 자꾸 농사일에서 뒤로 물러나신다. 시대가 시대라지만 호미질로 자식을 먹여 살릴 방안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더 큰 호미가 나오고 더 힘센 호미가 나온다. 사람 수백 명 호미질을 간단히 해치우는 기계 호미 트랙터가 그렇고, 사람 몇 천명 낫질하는 콤바인이 그렇다. 그러나 허리 굽고 쇠약해졌어도 호미의 애정은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 그 호미 날이 다 닳아 더는 땅을 후비지 못해도 허공 한 마디쯤 후벼 파고들어 가슴속을 후비며 눈물 나게 한다. 그 눈물이 어떤 힘보다 호미를 호미로 자리 잡게 할 것이다. 깊은 사랑의 호미가 아닐 수 없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