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의 바이러스는 반드시 있다
[세상의 자막들]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의 바이러스는 반드시 있다
  • 임영석
  • 승인 2020.08.23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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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필자가 박노해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이 1993년 ‘참된 시작’ 1쇄가 인쇄되며 시집을 구입해 읽었던 때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노동자 시인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박노해 시인을 손꼽아 왔다. 물론 노동자 시인으로 김해화, 故김기홍, 최종천, 임성용, 표성배, 등등 많은 시인이 있지만 노동자의 자존감을 높여준 시인의 시로는 박노해 시인을 으뜸으로 여겨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몇 번 문예잡지 부 주간으로 자리하고 있을 때 박노해 시인을 만나 노동문학의 위치와 노동자의 삶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통해 박노해 시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여러 여건 상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필자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시집과 ‘숨고르기’라는 시 배달을 통해서만 읽고 박노해 시인의 마음을 접하고 있다.

세상에는 얼굴을 억지로 내밀어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박노해 시인처럼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감 그 자체를 거부하고 은둔하며 삶의 지평을 열고 문학의 이상을 만들어 가며 창작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필자 역시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인터넷 공간에서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박노해 시인도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만나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박노해 시인의 글을 받아 읽고 있다. 얼굴 없는 시인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얼굴은 없지만 박노해 시인은 꾸준히 세상의 변화를 외치고, 인권과 생명과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포괄적 삶의 근원을 글과 사진을 통해 세상 밖으로 끝없이 마음을 분출하고 살아가는 시인으로 나는 말하고 싶다. 전태일 열사가 몸으로 노동자의 찌든 삶을 세상에 알렸다면 박노해 시인은 노동자의 찌든 마음을 글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지금이야 노동운동을 하든, 시민운동을 하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니 몸과 마음이 1990년 이전보다는 억압당하지 않고 통제받지 않는다고 본다. 스스로를 이겨내는 일을 할 수 있어야 노동운동도 하고 시민운동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에 박노해 시집 ‘참된 시작’은 내 마음을 다잡아 준 경전이었다.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 하 연둣빛 새 이파리 / 네가 바로 강철이다 /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 박노해 시 ‘강철 새잎’ 全文

세상의 선구자는 늘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다. 자기 자신의 몸을 세상의 거름으로 만들어 희망이 싹트게 한다. 새 빛 새날을 꿈꾸던, 암흑의 시절에 강철 새잎처럼 세상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연둣빛 새잎을 피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수많은 선구자가 살았다. 그들의 삶은 스스로 얼굴을 드러내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 거름이라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요즘 세상은 잡초만 우거진 세상처럼 황막하기 그지없다. 너나 나나 인권을 말하고, 표현의 자유를 말하고, 자유를 말한다. 총칼을 들이대던 시퍼런 독재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구호 한 마디 못 외쳤던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멍석이 깔리니 장구 치고 북 치고 자기들 세상이라 말하는 것을 보면 황막한 세월을 살며 세상을 향해서 희망을 노래한 시인 박노해 시인이 그저 우러러 보이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하나님을 팔아먹든, 부처님을 팔아먹든, 자유다. 그러나 말속에 거짓과 오만과 위선이 가득하다면 그 말은 썩은 시궁창 냄새보다도 더 고약할 것이다. 자연 재난과 코로나19라는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 희망을 잃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얼굴 없는 천사들이 수없이 나타나 그들의 무너진 가슴을 보듬어 주어야 할 때이다. 얼굴 없는 박노해 시인이 30년 전, 어두운 노동 현장을 밝혀주었듯이, 이제는 말보다 행동으로 세상을 구원해 주는 선구자가 나타나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하였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의 바이러스는 반드시 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희망을 말해주고 품어주는 선구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 선구자는 해와 달처럼 우리 가슴을 늘 밝게 비추어 줄 것이다. 멀리 있지 않고 내 가까이 그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그를 가슴속 깊이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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