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유자효 作 / 개
[시가 있는 아침]유자효 作 / 개
  • 임영석
  • 승인 2020.08.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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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作

 

의정부에서 열린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 경기도 예선
눈 먼 여인이 누런 개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들어섰다
대회장의 밖에 개는 공손하게 앉았다
여인은 화장실로 가서 짊어지고 온 가방을 풀어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여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다
몇 번을 맨발로 연습한 대회장 바닥의 감각을
맨발로 확인하며 단상에 올랐다
아무도 그녀가 눈이 먼 줄 몰랐다
여인은 창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낭송은 다소 서툴렀지만 절절한 한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여인의 차례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개는 눈을 끔벅이며 구석에 묵묵히 엎드려 있었다
누가 바라보면 개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진 눈
어진 눈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어느 착한 사람이 개의 형상을 하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여인은 장려상을 타고
개는 다시 여인을 인도해 건널목을 건넜다
아무도 그 개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묵묵히 엎드려 있던 누런 등과
천천히 끔벅이던 어진 눈
이름 없는 무수한 성자 중의 하나가
개가 되어 여인을 인도하고 있었다
저 흔한 우리 누렁이 중의 하나가 되어

 

유자효 시집 ‘성자가 된 개’, ‘시학’에서

 

 

성자(聖者)라 함은 모든 번뇌를 끊고 바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 성자는 사소한 일에 왈가불가 나서지 않는다. 유자효 시인의 시 ‘개’는 바로 그의 시집 표제작 ‘성자가 된 개’를 의미한다.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인도견이 되어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의 눈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랜 시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 때문에 화자의 인물이 시 낭송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읽고 그 시를 외워 낭송을 하겠다는 것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로 새겨지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고자 함일 것이다. 詩는 언어의 집이다. 그리고 마음이 숨 쉬는 거처다. 그 집을 입속에 지어 놓고 허공 가득히 낭랑한 목소리로 세상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함도 또 다른 성자가 되기 위한 행동이라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낭송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묵묵히 앉아 기다리는 인도견의 그 막중한 의무, 그리고 무엇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의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성자보다도 훌륭하다.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자신의 육체를 내어주어 희생을 감내하고 살아갈까 생각하면 미진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도견의 과묵한 행동에 시인은 이미 그 누렁이가 성자처럼 가슴 깊이 들어와 있다고 바라본다. 성자가 된 마음은 그것이 나무가 되었건 꽃이 되었건 아름답게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 감동에 세상이 밝아진다고 본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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