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애인가족 진료도 다 똑같았다
[기고]장애인가족 진료도 다 똑같았다
  • 김세중
  • 승인 2020.08.3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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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평창군 방림면 한의과 공중보건의사]
△김세중 [평창군 방림면 한의과 공중보건의사]

코로나가 잠시 숨을 고르던 6월 어느 날 원주시 장애인 가족 진료 연대활동이 첫발을 내디뎠다. 얼떨결에 진료소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된 책임감에 장애인 진료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교육을 듣고 자료를 찾아보았다. 가구 내에 장애인 한 명 이상이 가구원으로 속해있는 가족을 장애인 가족이라고 부른다. 장애인들은 갖고 있는 장애 때문에 신체에 무리가 올 수 있고 직간접적으로 많은 근골격계 질환이 나타나기 쉽거나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질환들이 발생하기 쉽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첩약은 지원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침 치료와 가루약 제형의 한약, 필요하다면 부항과 사혈 등의 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많은 환자를 보지는 못했고,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도 부족했다. 대부분은 장애 때문에 거동이 쉽지 않은 분들이었고, 그런 분들을 돌보느라 피로가 누적된 가족분들도 많았다. 불균형한 자세나 장애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생기는 소화불량 등을 공통적으로 갖고 계셨다. 침 위주의 치료 밖에 할 수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에 근육통과 소화불량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치료를 해 나갔다. 또 웰빙에 관심이 많은 요즘 트렌드와는 다르게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갖고 지내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 좋은 생활습관을 알려드리고 다음 만날 때까지 약속을 잘 지키면 침을 한 개 덜 놔드리겠다고 회유했다. 보통은 침을 많이 놔드리면 좋아하시는데, 여기 환자분들은 침을 무서워하셔서 침을 적게 놔주겠다고 하는 것이 잘 먹힌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선천적으로 골반에 장애가 있던 10살짜리 아이였다. 골격 형성에 약간의 기형이 있어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평발에 류머티스성 관절염까지 있어 거동이 불편하며 평상시에 통증까지 갖고 있는 환자였다. 아이의 어머님도 함께 오셨는데, 아이를 돌보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그런지 두통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모자는 하루종일 서로 붙어 있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둘의 만담이 일품이었다. ‘침 안 맞을래’, ‘그럼 밥 안 준다’, ‘아동학대 하네’, ‘그럼 밥 강제로 먹인다’, ‘와 좀 낫네’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갔다. 장애에 기죽지 않고 유쾌한 모습이 좋아 아이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학교는 재밌니? 했더니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는 홈스쿨링 중이었다. 제일 재밌는 과목이 뭐냐고 물어봤다. 의회로 수학이 제일 재밌다고 한다. “선생님은 수학을 제일 싫어했었는데… 대단한 걸?” 너스레를 떨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다. 하루빨리 안 아파져서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는 대답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과 달리 아이는 게임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유튜브를 보는 것도 좋아해서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도 큰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구나 싶었다. 학교가 재밌냐고 물어보기 전에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를 물어봤어야 했다. 장애인은 누구나 비장애인이 되고 싶을 거라고 은연중에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편견 섞인 질문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장애인들에게 진료를 베풀러 갔지만,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는 자리가 될 것 같았다.

몇 차례의 진료를 거듭하며 이제야 장애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야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대하면 된다. 평상시 진료실에서 진료할 때처럼 어디가 아프신지, 언제부터 아프셨는지, 어떨 때 더 아픈지, 평소 생활이 어떠신지 차근차근 물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장애인을 대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감이 오는 것 같다. 상대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서로 느끼지 못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면 된다. 모자랐던 나에게는 상당히 큰 성장이었다. 이런 성장을 만들어준 길벗과 원주시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개인적으로 큰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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