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하늘 같은 나무들
[세상의 자막들]하늘 같은 나무들
  • 임영석
  • 승인 2020.11.08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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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자연의 모습이 사람 삶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의 삶으로는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것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것들이 많다. 돌, 집, 길, 산, 강, 나무, 책 등등 무수하게 많다. 오늘은 나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 치면 그 열 배는 살았을 나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내가 자주 찾아가 보는 나무들을 보면 반계리 은행나무, 대안리 느티나무, 행구동 느티나무, 성황림 숲, 그리고 각 마을의 느티나무들, 소나무들, 향나무들이 바로 하늘 같은 나무가 아닌가 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 진산면 엄정리에도 400년쯤 되는 느티나무가 마을 한가운데 서서 여름이면 소쩍새가 찾아와 살다가고, 많은 새들에게 둥지를 틀어 살라고 가지를 빌려준다. 원주에 30여 년 넘게 살면서 원주 근교의 하늘 같은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하늘처럼 살아가는 법을 나는 배운다. 그중 하나가 묵묵부답(默默不答)이란 말이다. 원래의 뜻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같은 나무들을 보면서 묵묵부답이란 말이 침묵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들을 줄 아는 대화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반계리 은행나무는 노오란 은행잎으로 제 몸을 치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리를 맞고 찬바람 불어오면 노오란 은행잎으로 제 삶의 뒤를 다 덮어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된 것이 1964년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원성군 문막면 반계리 은행나무로 나온다. 제167호로 천연기념물이 지정되었으니 그 학술적 가치나 사료적 가치가 얼마만큼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호는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이다. 국보 제1호는 숭례문이라는 것을 웬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제1호가 대구 도동 측백나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아직 대구 측백나무숲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왜 내가 천연기념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느냐면 자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훼손되지 않게 보호한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 돌개 바위 하나, 숲길 하나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람 삶의 지표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유지하고 지켜져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무탈하다는 것이다. 지진이나 자연재해가 있다면 돌 하나, 나무 하나 바르게 자라지 않는다. 1,000년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그 지역이, 그 마을이 1,000년의 세월 동안 지진으로부터,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가 쓴 시 중에 ‘하늘 같은 나무’가 있다. 충북 영동 천태산 은행나무 축제를 위한 시 모음집 작품집의 표제작이다. 내가 천태산을 가본 것은 두어 번뿐이다. 전국의 많은 은행나무들을 보고 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반계리 은행나무만큼 수려한 은행나무는 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으뜸인 은행나무는 반계리 은행나무라 말을 한다. 이 나무를 보며 나는 ‘하늘 같은 나무’의 시를 상상했고 마음속의 길을 그렸다.

《밤이면 / 천태산 은행나무 / 어둠보다 더 어둡게 서서 / 개똥벌레 한 마리 / 몸속에 들인다 // 개똥벌레 한 마리 들였을 뿐인데 / 밤이면 밤마다 / 반짝반짝 빛나는 / 하늘 같은 나무가 되어 있다 // 하느님이 아니어도 / 부처님이 아니어도 / 하늘이 될 수 있다는 걸 / 어둠 속에 서서 / 매일매일 보여주신다 》

-임영석 시 ‘하늘 같은 나무’ 전문

나무가 천년쯤 살면 하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020년대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반을 이 나무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나무의 숨소리가 역사고 나무의 움직임이 역사의 동작이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묻고 답해주는 그야말로 ‘하늘 같은 나무’들이시다. 지금 반계리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은행잎의 아름다움이 하늘의 뜻을 새기고 있다. 그 뜻을 음미하는 일도 행복의 하나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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