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안연옥 作 / 달리는 돌
[시가 있는 아침]안연옥 作 / 달리는 돌
  • 임영석
  • 승인 2020.11.0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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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돌

-안연옥 作

 

사막, 데스밸리에는
달리는 돌들이 있다
아니, 그저 움직이는 정도지만
인간의 달리는 척도가 뛰는 것이라면
돌은 그 척도가 다르다
돌은 제 몸의 가장 편편한 곳으로 달린다
뒤집어 보면 자잘한 노래기나 지네처럼
무수한 발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바람 소속의 주자들이어서
모래 위를 달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바람을 달리는 것이다
바람의 트랙은 윙윙대며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빨리 달리는 경주가 아니
느리게 더 느리게 달리는 것이 목적이다
몇 년을 달린 길이가 고작
어린아이의 팔매질 거리보다 더 짧다
돌은 달리면서 잠자고
웃고 휘어진 바람을 만나면
돌도 저의 뒤쪽에 휘어진 흔적을 둔다
문득, 그 돌들의 느린 경주에
가장 늦게 달리는 돌에 막대한
돈을 걸고 싶은 것이다
너무 빠르다 싶으면 옆에 앉아
아주 느릿느릿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더 느려지자고 설득하다가
그 돌처럼 나도 느려지고 싶은 것이다

 

안연옥 시집 ‘푸른 꽃잎사이 나를 숨기다’, ‘시와표현’에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속도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속도가 한 달이란 시간이 걸린다. 이런 속도라면 사람은 가만히 지구에 살아가기만 해도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돌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지 그 감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속도라는 개념이 움직이는 시간을 통해 바라보고 느낀다. 안연옥 시인은 데스밸리라는 사막에서 돌리 달리고 있다는 현상을 바라본다. 돌이 바람에 움직이는 속도가 한 걸음도 안 되는 거리이겠지만 그 돌도 자기가 걸어가고자 하는 목적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놓고 사유의 감정을 말하고 있다. 노래기나 지네처럼 많은 발을 지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움직이는 그 속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해의 걸음보다 더 느린 속도로 돌은 달린다. 그 옆에 앉아 시인은 더 느리게 천천히 삶을 향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경마장에서 돈을 걸고 내기를 하듯 돌들이 달리는 속도에 어느 것이 가장 느리게 달리는지 그 돌의 속도를 바라보고 싶다는 의미는 그만큼 돌의 단단한 결기를 내 몸에 가득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걸음이 그만큼 빨리 나를 움직여 왔다는 반증이 숨어 있는 시 같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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