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
[이재구 칼럼]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
  • 이재구
  • 승인 2020.12.20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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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변호사]
△이재구 [변호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9년 넘게 억울한 징역형을 살고 가석방 상태에 있던 기결수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는 20대 초반에 구속되었고, 수사기관의 강압수사에 못이겨 자백하였다. 1심 재판에서도 자백하였고 선처를 구하였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심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며 무죄 주장을 했으나 항소심, 대법원은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재소기간 내내 무죄 주장을 하였지만 누구도 그가 무죄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고, 가석방된 후에도 살인자로 낙인이 찍힌 채 살고 있었으니 그가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매일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고,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마음대로 교도소 밖을 나갈 수도 없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먹지 못하는 죽음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과 같은 강압적 분위기에서 고통스런 조사를 모면하기 위해 자백을 하였고, 뒤늦게 강압수사에 의해 허위자백을 주장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형이 확정되었을 때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을 것이다. 기결수가 된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좌절하고 교도소의 창살 밖을 바라보면서 결백을 밝힐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렸을까?

초한지에 보면 촉비는 인저(인간돼지)가 되어 7년이나 돼지 우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 왕비 여태후는 남편 유방이 죽자 유방의 애첩이던 촉비와 아들을 죽이기로 작성하고 아들을 먼저 살해한 다음 촉비의 귀, 눈, 코, 혀, 손과 발을 다 자르고 돼지 우리에 넣어 돼지처럼 살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촉비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으면 바로 굶어 죽을 수도 있었을텐데 왜 끈질기게 삶을 유지했을까? 촉비는 자신에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잔인한 고통을 준 여태후를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그 종말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형수 오휘웅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결국 1979년 사형이 집행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결정적인 증인이 자살하였고 재심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는 자신에게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운 경찰, 검사, 판사들을 저주하면서 죽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최근 총리를 지낸 정치가의 부실장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성추행 사건으로 고소를 당한 전 서울시장도 조사를 받기 전 생을 마감하였다. 몇 년 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던 롯데그룹의 2인자인 모 부회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이 수사를 끝까지 받고 재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화성 살인사건이나 촉비, 사형수 오휘웅과 같이 무기징역이나 사형 선고를 받을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일까? 사람들이 받는 정신적 고통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제일 큰 고통은 무엇일까? 혹자는 통상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100이라고 할 때 자식이 죽었을 때 고통은 200이라고 한다. 위에서 자살한 사람들은 자살 직전 목숨을 포기할 정도의 무한대의 고통이 심장을 터질 듯 압박했던 것 같다. 과연 목숨과 바꿀 정도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 모시고 있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한 것일까?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구속되면 낯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혀 깨물고 죽겠다고 했던 피고인이 막상 구속되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억울하지만 제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무인도에 있습니다. 무인도에서는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창피한 일을 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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