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기철 作 / 어떤 시간이 금이 되나
[시가 있는 아침]이기철 作 / 어떤 시간이 금이 되나
  • 임영석
  • 승인 2021.01.10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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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이 금이 되나

-이기철 作

 

피는 꽃 깔고 앉아
노래한 날 있었다
연필 깎아 흰 종이에
은빛 언어들로 편지 쓴 적 있었다
마음 새지 않게 단추 꼭꼭 여미며
새벽이 올 때까지 푸른 말 불러내어
책받침에 글자 배도록 눌러 쓴 적 있었다
봄풀처럼 일어서서 맞는
순금의 아침, 비단 놀
이제는 추억이 재가 되지 않도록
글자 위에 글자를 입혀 쓰는
내복처럼 따뜻한 날들의 기억
부르면 새가 되어 등 뒤로 날아가는
멀고먼 추억의 따뜻한 아랫목

 

이기철 시집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서정시학》에서

 

하루하루 순금의 시간이 아닌 날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기철 시인은 어떤 시간이 순금(純金)의 시간인가를 생각한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소중한 시간을 무엇을 해야 소중한가를 모른다.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는 공부를 해서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랑할 시간에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내야 하고, 자식을 키울 시간에는 자식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이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 아닐 것이다. 나와 더불어 내 가족, 그리고 이웃들,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면 그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정치를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이러한 커다란 일 말고도, 행동 하나하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누를 끼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움의 시간을 보낸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수많은 시간 배우고 익혔음에도 세상에 나와 살아가면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모난 돌은 모난 돌로 바라보고, 둥근 돌은 둥근 돌로 바라볼 줄 아는 삶, 그 마음이 소중한 시간 아닌가 생각한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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