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승예 作 / 뭉그러진 방향
[시가 있는 아침]이승예 作 / 뭉그러진 방향
  • 임영석
  • 승인 2021.01.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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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그러진 방향

-이승예 作

 

그가 두고 간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손가락이 없어서 방향이 사라진 허공
바람이 잠잠한 건 중력과 상관없는 거다
고단한 시간이 마디를 지나간다
모든 방향은 손가락 끝으로 모이고

둥근 달이 달린 자전거를 탄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함몰되었다 반복적으로 돋는 달은
기계에 끼어 뭉그러진 그의 손가락을 닮았다

마른나무 사이를 멍들며 지나와서
불규칙한 바람의 표정으로 빳빳하게 뻗은 검지손가락

자전거는 인류의 혁명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며
달의 변방에서 더없이 펼쳐지는 그의 평원에
자기방식의 깃발을 꽂는다

손가락이 아린 날은 방향도 아려
뭉그러진 방향 너머 비로소 가능해진
깃발의 펄럭임

방향이 달려오는 쪽으로 그가 손가락을 뻗는다

 

계간 『발견』 2020년 여름호에서

이승예 시인의 시 「뭉그러진 방향」은 시선이 바라보는 방향을 통해 이미 주어진 생각이 있고 몸의 행동이 있다는 이차원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방향이라는 것은 일정한 방향을 듯한다. 목적에 두었던 방향을 가리키던 손가락이 사라져서 허공이 아무 방향이 없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방향은 삶의 목적이다. 목적을 향해 방향이 설정되기 때문에 방향이 뭉그러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련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결론이다. 요즘은 생각의 스펙트럼인 너무나도 다양하다. 눈과 귀와 코와 입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우유병에 든 우유처럼 보이기도 하고, 솜사탕처럼 열과 바람에 날아가 긴 막대에 감기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이승예 시인은 그런 오감의 감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방향을 설정해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방향이 달려오는 쪽으로 손가락을 뻗는 그가 어디에 있겠는가 싶다. 방향이라는 것이 마치 움직이는 사물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방향은 사람의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생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과 시선이 방향이라는 사물의 표정을 읽어내는 데, 생각은 깃발이 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뭉그러진 방향은 누군가의 깊은 삶의 숨소리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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