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별세상(別世上)의 설 연휴
[비로봉에서] 별세상(別世上)의 설 연휴
  • 심규정
  • 승인 2021.02.0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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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지난주 경기도 수원에 계시는 큰 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생전에 하늘처럼 떠받치던 장손의 전화. “혹시 집 안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나?”하고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을 타고 이런 말이 귓전에 꽂혔다. “이번 설날에 작은아버지, 고모, 조카들 모두 원주에 가지 않기로 했어. 단, 나랑, 집사람, 원주에 있는 너랑, 막내동생만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제사음식도 네 형수가 준비해 간다.” “잘했어. 형수가 고생하시겠네”라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여파로 아마 대부분 시민도 차례 올리기를 취소하거나 약식으로 치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년 설날만 해도 코로나19 초기라 지금처럼 이런 준전시 분위기(?)는 아니었다. 코로나19 이전도 그랬지만, 모처럼 친인척들이 한데 모여 오붓한 한때를 보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하랴,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교환하랴, 조카들이 서운하지 않을 정도의 인심 쓰라. 세배가 끝나면 사촌 동생, 조카들로 산소 참배단을 꾸려 조상의 음덕을 기렸다. “앞으로 후손들 잘되게 도와주세요” 마음속으로 진심을 담아 이렇게 속삭였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이 불과 1년 전의 상황인데, 먼 옛날 빛바랜 흑백사진 속 향수 같다. 지금의 살풍경한 상황과 확연히 대비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심리학 용어 중에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 에로스는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힘을 의미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타나토스다. 파괴의 본능, 죽음의 충동을 말한다. 영화로 비유하면 지금 살기등등한 코로나19가 타나토스로 분(扮)해 지구를 마구 헤집고 다닌다. 전파력의 끝판왕답게 확진자, 사망자 숫자에서 전염병의 역사를 갈아치울 기세다. 

코로나19에 중과부적의 상황이라는 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쓸쓸한 장면이 방금 뽑아낸 칼라사진처럼 생생하고 선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너무 지루하다. 언제 결론을 향해 치달을지, 모를 일이다. 스토리라인 또한 너무 복잡하다. 코로나19가 주연 같기도 하고, 인간이 주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둘 다 조연이고, 제3의 주연이 나타날지, 전혀 종잡을 수 없다. 비록 우리는 상처투성이지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일부터 설날 연휴가 시작된다. 예년 같은 민족대이동은 없겠지만, 혹시 지금과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지면서 코로나19가 재확산되지 않을까, 방역 당국은 노심초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온다. ‘파괴적인 타나토스’ 코로나19는 아마 우리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코로나19로부터 개개인을 지켜주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에 방심하면 자칫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우선 각자 마음속에 만리장성보다 더 단단한 요새를 구축하자. 그런 다음 생태 백신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 더 가다듬고 실천해 옮기자. 스스로 이런 주문도 걸자. “나로부터 족쇄(足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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