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골판지의 환골탈태
[기고] 골판지의 환골탈태
  • 이주은
  • 승인 2021.02.2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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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딩동~ 내게 주는 선물이 오늘도 도착했다. “택배 왔습니다~.” 택배의 천국 우리나라의 서비스는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춘 상품이 다양하다. 특히 2020년을 지나며 비대면 택배물량 규모는 수직상승하고 있다. 택배 서비스나 우체국 포장상자 등 우리가 많이 쓰고 쉽게 버리는 포장상자. 선물이나 소포를 안전하게 싸서 받는 이에게 전달되어지는 포장상자는 주로 골판지로 제작된다. 폐지와 크래프트 펄프(kraft pulp; KP)로 제작되는 골판지는 폐지의 수급이 어려워지면 가격이 오르고 몇십만 톤의 폐지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적절한 재활용품 분리배출은 자원의 선순환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국가나 지역의 재정손실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디자인계의 거장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7~1998)은 ‘유목민 가구’(Nomadic funiture)라는 책에서 포장상자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홈퍼니처를 선보였다. 소외된 사람을 위한 디자인에 평생을 바쳤던 그가 지향했던 것은 현재를 사는 디자이너에게도 화두인 ‘지구를 위한 디자인’이었다. 일정한 크기로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조합하면 집에서도 쓸 수 있는 간단한 골판지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골판지는 몇 번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견고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 각자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강도로 만들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골판지는 라이너(평면의 판지)와 골재(구불구불한 판지)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골재 하나로만 만들어진 판지는 파장골판지(Wary Corrugated Fiberboard)라고 하며 주로 완충재에 쓰인다. 골재 한쪽에 라이너 1개를 접합한 것은 편면골판지(Single Faced Corrugated Fiberboard), 편면 골판지의 맞은편에 라이너 1개를 더 접합한 것이 양면골판지(Single Wall Corrugated Fiberboard)라고 하며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쓰는 골판지이다. 골재와 라이너의 조합이 많을수록 상자는 더 단단해지고 삼중양면 골판지의 경우 나무상자 대비 20% 이상 원가 절감과 적재효율, 압축강도, 파열강도가 크며 나무상자보다 폐기가 쉬워 친환경적인 순기능이 있다.

재활용과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이 일상다반사가 되면서 상업적으로 재활용품을 디자인에 활용한 사례가 많아지고 골판지를 이용한 디자인 제품도 많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현수막과 방수천이 가방이 된 오래된 업사이클링 사례부터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사례,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1,500장의 폐마스크로 1개의 의자를 만들어낸 패기 있는 대학생도 등장했다.

재활용품을 재료로 ‘명목상의 착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선한 자원의 순환을 유도하는’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많은 활약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 버려지는 종이상자의 테이프를 떼고 쓰레기도 소중하게 분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일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분리한 종이상자는 어딘가에서 다시 새 생명을 얻어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택배를 보내는 상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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