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입학식
[세상의 자막들]입학식
  • 임영석
  • 승인 2021.03.21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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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3월은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생동감이 있어 좋다. 농부는 땅에 씨앗을 심는 일로 희망을 만들고,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들이 입학하는 입학식을 통해 희망의 씨를 키워간다. 나무들은 새 잎을 틔우는 일을 시작으로 따뜻한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서 그런지 입학식이 예전처럼 들뜨거나 흥분을 갖게 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입학식은 신입생을 모아 놓고 반을 나누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장에 줄을 서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기 위한 행사이다. 요즘은 그런 입학식이 코로나19로 인하여 그 절차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를 땅에 심는 것도 흙을 파고 그 속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며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평생 입학식의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움마저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지금 / 운동장에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열을 짓고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 삐뚤삐뚤 삐뚤어진 / 일학년 줄에서부터 / 이학년 / 삼학년 / 사학년으로 / 층이 지며 차츰차츰 잡혀져 가는 / 하나의 질서가 / 오른쪽 마지막 육학년 줄에서 / 어엿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 - 한성기 시 「열」 전문

이 시는 1969년 발간한 한성기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다. 필자가 입학하던 때의 모습이다. 옛 추억을 떠올려보면 입학식 날은 어머니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입학식에 왔고, 왼쪽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아 놓아 막 입학을 마친 일학년임을 누구나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며 줄을 맞추어 주어도 그 줄에서 단 1분도 서 있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 낯선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세상에서 제일 큰 땅이 운동장이란 생각을 갖게 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면 내 짝꿍은 누구일까 설레기도 했고, 낯설음과 긴장감에 오줌을 바지에 그대로 싸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모든 것이 별천지처럼 새로움을 안겨주는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요즘 아이들은 유아원을 다니고 유치원을 다닌 후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그런지 질서도 잘 지키고 선생님과 어울리는 것도 낯설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봄은 모든 곳에서 입학식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농부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모습이며, 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들이 모두 입학식처럼 내게는 보인다. 그런데 농부들이 땅에 씨를 뿌리는 모습과 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이 입학을 하는 모습은 참 많이 변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가난하고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1969년 당시에는 책가방 대신 책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고학년 형과 누나들의 손을 잡고 십여 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학교를 오며 가며 징검다리 시냇물을 건널 때면 형들의 손을 꼭 잡고 건넜고, 개구리 뒷다리를 실로 묶어 마치 장난감처럼 놀이 삼아 놀았던 추억들이 아련하다. 어쩌면 그런 내 추억의 향수가 깊게 몸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라면서 시를 쓰는 시인의 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입학하여 초등학교를 다녔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서른을 훌쩍 넘긴 사회인이 되어 있다. 내 나이 이순이 되어 새롭게 입학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감기만 걸려도 온갖 걱정을 다하고 애지중지 키우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러한 부모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추억이 깃들어야 할 입학식을 딴 세상에 살아가는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아이들도 자신들이 커서 내가 입학하던 해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책상마다 칸막이를 설치하고 마스크를 쓰고 손에 소독약을 뿌리고 어깨동무도 못하고 학교를 다녔노라고 말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두고 입학을 하는 아이들이 먼 미래에 어떤 꿈을 만들어 놓을지 기대되고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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