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이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안부를 묻다]이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까
  • 임이송
  • 승인 2021.03.28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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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이쁜이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다. 신이 내게 보낸 선물이다. 그 생각은 이쁜이를 키우는 내내 바뀐 적이 없다. 남편의 암 진단을 받고 오던 날, 아파트 마당에서 이쁜이를 처음 만났다. 몸은 바짝 말라있었고 시커먼 털도 엉켜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쁜이가 아파트 마당에 버려진 지는 이미 두어 달이 지난 후였다. 우리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버리고 갔다. 이쁜이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파트 마당을 떠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때 이쁜이를 보자마자 내가 믿는 신께 기도했다. 저 아이를 거둘 테니, 남편을 살려달라고. 

그러나 집으로 데려오기가 만만찮았다. 이미 여러 차례 시청 직원들과 경비아저씨와 어린아이들에게 시달린 이쁜이는, 차 밑에 숨어서 나오지를 않았다. 누군가 조금만 다가가도 멀리 도망갔다가 다시 아파트 마당 자동차 밑에 숨어 있곤 했다. 주민들은 더러운 개가 돌아다니면 위험하고 집값도 떨어진다며 시청에 계속 민원을 넣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청에서도 포획하려 애를 썼지만, 번번이 놓쳤다. 우리 가족 또한 이쁜이를 데려오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지만 매번 실패했다. 먹이를 주는 나에게도 멀리서만 꼬리를 흔들 뿐 절대 가까이 오지 않았다. 까만 눈동자에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다.

몸집이 커서 보신탕집에 팔아넘기려 개장수들도 들끓었다. 처음엔 나만 밥을 챙겼지만, 나중엔 강아지를 키우는 몇몇 사람들도 밤이면 먹을 걸 가지고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CCTV에 계속 밥을 주는 게 찍혔다며, 주민들의 항의가 심하니 밥을 주지 말라고 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안타깝게 흐르던 중, 시청 직원들과 아파트관리실과 경비아저씨들이 힘을 모아 이쁜이를 잡기로 했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나는 관리실에 찾아가 사정을 했다. 내가 데려가 키울 테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마침내 공고한 날이었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촘촘하게 그물망을 치기 시작했다. 이쁜이가 늘 있던 곳을 중심으로 최대한 넓게. 나도 미리 도움을 청해 놓은 동물병원 의사와 함께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이쁜이가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이웃집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아이가 자신의 집에 있다며. 나와 같이 먹이를 주던 엄마를 따라 그 집에 가 있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따라온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덕분에 이쁜이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 우리 집으로 왔다. 눈빛은 불안과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코지를 했으니, 그럴 만 했다. 일 년이나 먹이를 준 나도 믿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바짝 긴장해 있었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우리와도 일정한 거리를 뒀다. 우리 가족의 사랑에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산책을 나갔다가도 경비아저씨나 꼬마들만 봐도 꼬리를 내린 채 그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 남편은 완치가 되었고 이쁜이도 우리의 사랑에 조금씩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몸속에 박힌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았다. 16년을 함께 했는데도, 쓰다듬으려는 우리의 손짓에도 놀라 뒤로 물러설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안아주었다. 그런 아이가 지난주에 죽었다. 아픈 걸 그토록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밥을 잘 먹지 않아 병원에 데려갔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여 간 주사기로 미음을 먹이고 약을 먹이며 돌봤다. 이쁜이는 우리에게 온전히 몸을 맡긴 채 죽음을 준비했다. 참으로 오래 걸렸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완벽하게 상처가 회복되었다.

너무 순해서 누군가 붙여준 이름, 이쁜이! 텅 빈 우리 집. 우리 가족은 지금 슬픔에 빠져 있다. 화장을 하고 한 줌의 재로 돌아왔을 땐 내 뼈와 살이 탄 듯했다. 누군가는 개 한 마리 죽은 것에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가족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아픔도 같은 무게로 느끼고 행복도 같은 부피로 느낀다.

이쁜이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었고 우리 가족의 시간이었다. 맘껏 사랑했고 우리는 그 아이로 인해 행복했다. 우린 서로에게 선물이었다. 내 생애 이처럼 누군가를 또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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