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시장 선거…벌써부터 몹쓸 학연 프레임
[비로봉에서] 시장 선거…벌써부터 몹쓸 학연 프레임
  • 심규정
  • 승인 2021.03.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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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경기도에서 10년 동안 기자 밥을 먹은 뒤 고향 원주로 돌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1년이다. 새로 개국한 방송사다보니 의욕이 샘솟아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학연, 지연, 혈연의 끈과 잠시 일정한 거리를 두자. 이런 것에 얽매이면 기자생활을 집어 치워야 한다.”, “냉정하게 본분에 충실하자”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냉혈한 같지만, 기자를 천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일종의 학연과의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다. 다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연은 유지했다.

1년 정도 지날 즈음. 이런 말이 들려왔다. “심규정이 춘천 출신 아냐, 춘천고 나왔는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의도한 바를 이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은 지역이다보니 학연의 굴레는 특히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소설 ‘천년의 질문’(조정래 저)에 “학연·지연·혈연이 반팔자다“라고 했겠나. 학연의 영향력도 성공으로 가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다.

내년 지방 선거를 1년여 앞둔 요즘. 원창묵 시장이 3선 제한에 묶여 원주시장 선거가 무주공산이 되면서 후보들이 군웅할거하는 가운데 선거 때만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프레임에 실소를 지을 수 없었다. 바로 ‘원고(원주고 출신) 대 비원고 프레임’이다. 한상철·김기열 시장, 원창묵 시장에 이어 이광재·송기헌 국회의원 모두 원주고 출신이다보니 “원고 출신들이 다 해먹고 있네”, “이번엔 비원고가 꼭 당선되어야 한다.”라며 정치권 참새들이 입방아를 찧고 있다. “왜 특정고 출신에 한정된 인재들만 기회를 독점하는지” 이런 반문도 있다고 들었다.

여야 사정에 밝은 정치인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다보니 무근지설은 아닌 듯 싶다. 유력 정치인 측근조차 “○○○는 ○○고 출신이어서 적임자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 프레임이 어느정도 먹혀드는 모양새 같다. 그간 취재 경험에 비춰보면 여야 박빙이 예상되면서 학연이 당락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어 출마자들은 공개적으로는 동문회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내심 타 동문들 끌어 앉기에 고심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런 학연 프레임은 이만저만한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지역 행정의 수장이 되겠다는 인사들이 ‘나됨’을 통해 ‘우리됨’, ‘하나됨’을 추구하기 보다 ‘우리됨’, ‘하나됨’을 먼저 강조하는 분열적 사고에 젖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상대를 특정 프레임으로 덧씌워 반사 이익을 보려는 퇴행적이고 얄팍한 술수이다. 이런 습관적인 유대감은 원주시의 인구 가운데 원주민이 20~30%에 불과한 점, 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후보 가운데 원주지역 고교출신이 아닌 후보들에게는 더 큰 소외감, 상실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굴절된 사고의 전형이다. “저는 원주에서 고등학교도 안 나왔어요.” 출마예상자로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리는 한 인사의 넋두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돌고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동가홍상)’라는 말은 끼리끼리 문화의 산물로 성숙된 시민의식,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선거문화다. 이런 낡은 프레임이 아직도 통할 것이라고 보는 자체가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얕잡아 보는 저급한 발상이다. 정치구도를 오목렌즈, 블록렌즈로 들여다봐 왜곡된 이미지를 볼 수 밖에 없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이제 학연의 장벽을 깨야 한다. 자질과 능력으로 검증받고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가다듬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시민들도 동문이란 프레임의 속박에서 벗어나 광각렌즈(廣角lens)로 미래를 생각해 일꾼을 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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