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봄비
[세상의 자막들]봄비
  • 임영석
  • 승인 2021.04.18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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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봄이라는 말은 ‘바라보다’, ‘보다’라는 말의 준말이다. 사람이 바라보지 못하는 곳을 바람과 햇살과 하늘, 그리고 온 우주의 섭리로 품어 바라보는 그런 계절이다. 꽃 한 송이 피우는 게 쉬운 일 같아도 일 년을 가꾸고 보듬어서 피워내야 한다. 그러니 봄은 바라보면 볼수록 차고 넘치는 것들뿐이다. 부족함이 없다. 양지가 되었건, 음지가 되었건, 장소를 불문하고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그럼에도 봄이 주는 그 뜻을 제대로 새겨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봄은 빛, 볕, 해의 어원을 지니고 있다. 빛이 반짝여 볕을 만들고 영원히 지속하게 하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봄이다. 꽃이 피는 것도 모두 빛과 볕과 해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도 빛과 볕과 해의 걸음이 지나가야 돋아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봄비가 있어야 한다. 봄비는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마음의 기둥이다. 이 봄비를 밑천으로 세상이 더 푸르게 바꾸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香煙)과 같이 /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시 「봄비」 전문

세상이 흉흉하다. 여기저기 각종 사건 사고에, 어지러운 정치판에, 코로나19라는 질병에, 뉴스를 들을 때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봄은 언제 오는가 싶다.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곳이 있다면 자연이 보여주는 무궁하고 무궁한 모습뿐이다. 그럼에도 봄비 같은 희망을 말하고,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눈을 맑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저 잘났다고 말하는 탓에 갈증만 더한다. 봄비는 고사하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니 세상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람의 인격과 품성보다는 돈과 학식에 의존한 결과들이 아닌가 싶다.

봄비는 마음의 눈을 더 맑게 하고 시원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긴 겨울의 추위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더는 땅이 얼지 않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수복 시인은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훌륭한 백신이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답답한 가슴을 씻어내는 그런 영혼을 만들어 준다. 봄비가 자연의 품에 희망을 만들어 주고 꽃을 피워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 주고 있다면, 이 봄비는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백신인 것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봄은 오고 또 봄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소중한 가치를 쉽게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오늘은 오늘 하루뿐이다. 오늘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내 가슴에서 불타서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삶의 봄비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건강함을 찾는 것이 봄비일 것이고,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은 땀의 수고를 찾는 일이 봄비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한 몸 던져 세상의 봄비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우주의 섭리를 깨닫고, 빛과 볕, 해의 근원을 깨달아야 봄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말한다. 그 근원이 빛과 볕, 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만들어지고 세상이 조화롭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안진 시인은 봄비가 되고 싶어서 320미리짜리 피 한 봉지를 뽑아 주며, 내 몸 구석구석 새살 돋아나는 봄을 가졌다고 말했다. 봄비는 작은 빗방울이지만 누군가의 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따듯한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래서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소리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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