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미리 걸어 본 치악산 바람길숲...치유길 ‘예감’
[비로봉에서] 미리 걸어 본 치악산 바람길숲...치유길 ‘예감’
  • 심규정
  • 승인 2021.04.1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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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하늘을 점령한 미세먼지가 깨끗이 가신 지난 12일 오후 옛 중앙선 폐선 구간. 짙푸른 하늘 위로 솜뭉치 같은 새하얀 구름이 떠다녀 봄기운이 완연했다. 원주시가 반곡역~우산동 한라비발디 아파트 11.2km에 추진하는 치악산 바람길 숲 조성사업 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찾았다. 바람길 숲의 청사진이 머릿속에 영화 스크린 펼쳐지듯 박혀있는 만큼 현재의 주변 풍광을 깊이 음미하고 싶었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 직접 설계자가 되고 싶었다.

반곡역에서 봉산동 방향으로 걷던 중 “세상에 이런 천혜의 조건을 갖춘 구간이 있을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이 있듯, 좌로는 신도시의 삐죽삐죽 솟은 공공기관 빌딩 숲, 철길 바로 지척에는 한적한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로는 치악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운치를 더했다. 봄옷으로 치장한 산세는 거대한 액자 같았다. 춘산여소(春山如笑)라고, 봄 산이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철길이 우리 삶의 공간인 지표면보다 높아 주변을 다양하게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들녘에서는 땀 수건을 목에 두르고 밭이랑을 고르는 농군, 봄나물 캐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다.

다양한 풍경이 실밥처럼 딸려와 취해 있는데, 갑자기 달착지근한 향기가 화살처럼 코끝을 스쳤다. 둘러보니 ‘쌀꽃’, ‘밥꽃’이라 불리는 아름드리 이팝나무가 황홀경을 내뿜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지그시 눈을 감고 코로 냄새를 맡는 순간, 향기가 가슴 깊숙한 곳으로 전해져 정신을 맑게 했다. 앞으로 바람길숲에는 특화된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다양한 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와 은은한 꽃향기는 우리에게 활력 세포가 될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과수원에 만개한 배꽃, 복숭아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나중에 나들이객들을 대상으로 과일 시식 코너를 마련하면 농민들이 재미 좀 볼 텐데.” 이런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길이 50m의 화천터널에 들어서자, 찬 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금세 멎는 듯했다. 터널 안에서 보니 터널 바깥에 펼쳐진 ‘봄의 전령사’ 진달래 군락지가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하고 있어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발걸음은 행구동 수변공원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공원 하늘 위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호수공원 제방 둑을 지나던 나들이객들이 분수 쇼 즐기고 있었다. 분수 뒤로 치악산 비로봉이 한 손에 잡혔다. 아직 걷어내지 않은 철길이 온전히 버티고 있는 곳도 있었다. 위로 전기 공급장치도 그대였다. 중앙선 폐선을 모두 들어낼 것이 아니라 일부 구간만이라도 철길과 쇄석을 보존한다면 자라나는 세대의 체험공간으로 제격일 것이다. 여기서 문득 떠로른 생각 하나. 빼곡한 나무로 둘러싸인 숲을 거닐다 인근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북카페가 있다면 아주 금상첨화가 아닐까. 활자의 숲을 눈으로 쫓는 것은 풍성한 지적 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므로 바람길숲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1시간 30분을 걸었을까. ‘낙후지역의 대명사’인 봉산동, 학성동 등 구도심 지역이 눈앞에 펼쳐졌다. 철길에서 도심 전경을 바라볼 때 다른 구간은 내려다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주거지와 눈높이도 같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주민들이 열차 소음에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문득 폐선 조성의 선도적 사례로 꼽히는 광주 푸른길의 사례가 떠올랐다. 광주역~남광주역까지 8.08km인 광주 푸른길은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고 있다. 치악산을 끼고 도는 중앙선 폐선 원주 구간과는 입지 수준이 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조성된 지 7년이 지나면서 도심에서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고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는 부수 효과도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불규칙한 쇄석길이 연속으로 이어진 까닭에 무릎 관절에 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더이상 걷다가는 자칫 다칠 수 있다.”라는 생각에 1시간 30분 만에 퇴보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철길에서 봄의 진수, 리듬을 즐길 수 있었다. 어느 관광지에 가서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을까. 미래의 바람길숲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하루였다. 힐링이 대세인 지금,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로 치장한 바람길숲이 조성된다면 소금산출렁다리를 능가하는 사계절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원주시는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후세에 족적을 남길 만한 관광자원을 조성한다는 자세로 콘텐츠를 입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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