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맹신(盲信)은 민주사회를 좀먹는 독버섯이다
<비로봉에서>맹신(盲信)은 민주사회를 좀먹는 독버섯이다
  • 심규정편집장
  • 승인 2016.11.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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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요즘 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을수 없다. 강남아줌마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심장부 청와대를 유린했기 때문이다. 사적(私的)라인이 청와대라는 공적(公的)라인을 이렇게 초토화 시킬 수 있다는데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녀가 도대체 어떤 신분 이길래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들을 부하직원 다르듯 대했는지, 그리고 대기업으로부터 기금을 끌어 모으는 데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것, 이외에도 청와대 문서가 담긴 태블릿PC를 이용한 점, 그녀를 둘러싼 의혹은 마치 양파껍질 벗기듯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지율이 10% 이하로 곤두박질 치고, 노도(怒濤)와 같이 성난 국민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자, 박근혜 대통령은 급기야 두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특검 수용뿐만 아니라 검찰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무총리에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행정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를 내정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으나 야권의 반발기세는 여전하다.

지금 국민들은 심한 배신감에 휩싸여 있다. ‘원칙이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반칙을 용인한 대통령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청와대 참모를 지낸 인사들로부터 ‘대통령과 독대하기 힘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현실에선 소통보다는 불통의 대통령이었음이 여실히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크다’는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워낙 강했고, 총탄에 부모를 잃은 측은지심(惻隱之心),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에 대한 존경심이 발동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지지층으로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광팬을 만났는데, 그 역시 최순실 게이트를 빗대 “정말 이럴 줄 몰랐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격”이란 말까지 쏟아냈다.

박근혜 열혈 지지층 조차 등을 돌리게 된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맹신(盲信.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작정 믿음)의 위험성을 다시금 실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대통령이 분명히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한 일련의 상황에서 그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적하기 보다는 오히려 응원의 목소리, 심지어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진영의 모습에서 “이래서 우리나라가 정치후진국이 될 수 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지하고 사랑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정당 아니면 무조건 싫다’는 이런 극단적인 반대진영의 혐오는 민주주의 발전을 해치는 독버섯이다. ‘박근혜냐 아니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보수냐 진보냐’, ‘우파냐 좌파냐’ 하는 마치 ‘무 자르 듯’하는 이분법적 논리는 왕조시대의 유물 아닐까.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하면 무조건 잘하는 것이고,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이런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논리’는 우리사회에서 메스로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성공하길 바라고,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면 애정 어린 충고야 말로 훗날 보약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민심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돗단배와 매 한가지다. 성난 민심의 파도를 잘 읽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타부타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맹신은 당사자로 하여금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착시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맹신의 덧에 걸릴수 있다. 결국 벼량 끝에 내몰릴수 있다. 지도자는 맹신을 경계해야 한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소아병적인 사고는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사회가 영화제목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사회가 되지나 않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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