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로드 킬
<차방한담> 로드 킬
  • 금태동
  • 승인 2017.07.1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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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 <시인>

부론면 소재지에서도 좀 떨어진 한적한 곳을 소개받아 귀촌한 이태전의 오월은 녹음이 우거지고 날씨는 청명하였다.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어가는 한적한 포장길은 깨끗하였고,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는 새를 쫓는 목줄 없는 강아지들은 저희들끼리 분주했다. 도심에서 살아온 아주 긴 세월동안 흙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 비단 내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남한강가에 차를 세우고 견지낚시를 하는 한가로운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 맑은 물속에 발을 담그니 오십년의 세월을 거스르는 추억의 영상이 흐르는 물결 속으로 아른거린다. 작고 납작한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뜨는 반백의 초로가 또한 맑은 물속에 비춰진다.

이른 아침에 개가 요란하게 짖는 이유를 알고 싶어 밖으로 나왔더니 마당가에 서성이던 고라니 한마리가 쏜살같이 내 옆을 스치며 뒷산으로 도망을 간다. 산과 들, 물과 나무 그리고 야생조수가 어우러지는 나의 새로운 삶터는 내게 무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둥지를 틀고 얼마 후 문막에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늦은 시각의 귀갓길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는 어둠속이었다. 자동차의 전조등이 두 개의 파이를 만들어 어둠속 물상들을 빠르게 비춰 주었다. 순간 바로 앞 우측 둔덕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툭 튀어나오는 것을 알고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지만 범퍼에 부딪치는 둔탁한 충격음을 피할 수 없었다. 차를 세우고 건너편에 널브러진 고라니를 보노라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고 진땀이 났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가 앗았고 이제 나는 삼십여 년의 무사고 경력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불편했던 기억이 쉽사리 뇌리를 떠나가지 않고 있던 어느 날 고개를 넘고 있는데 고라니 한 마리가 뒤쪽 두 다리를 쓰지 못하면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한 이 생명 앞을 자동차들은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청에 전화를 했고 야생조수 구호를 담당하는 부서 직원을 찾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빨리 와도 한 시간은 걸릴 것이라는 답변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그래도 구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조금의 안도를 했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무르익을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인근에서 대농을 하는 동년배가 내게 유해조수 구제를 나간다며 함께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그가 운전하는 트럭의 조수석에 탄 나에게도 역할이 주어졌다. 인근의 들판으로 난 농로를 따라 그가 천천히 운전을 하였고, 나는 써치라이트를 멀리 샅샅이 비추며 목을 축이려 내려온 고라니의 무리를 찾았다. 고라니의 눈은 강력한 라이트와 마주치면 선명한 녹색 발광을 하며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가 차를 멈추고 엽총을 조준하여 사격을 했다. 고라니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붕 떴다가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두 시간 정도에 열 마리를 잡았다.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고라니의 머리를 장화를 신은 발로 짓이기며 철판가위로 귀를 자르고 꼬리를 잘라 회수하였다.

유해조수 구제 실적을 보고하고 보상을 받기 위한 근거를 위해 제시된 절차에 충실하는 그에게 고라니를 구하기 위한 지난번의 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고라니로 인한 농가 피해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 했다. 서로가 죽이려 하는 전쟁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역사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야 하는 생명의 존엄이 어찌 인간에게만 한하겠는가. 천만관객을 자랑하는 영화 '부산 행'에서 좀비로 되살아난 트럭에 치인 고라니가 환영처럼 나를 괴롭힌다. 한 잔의 맑은 차를 우려 인간에게 희생당한 동물들의 영혼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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