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유색유감(有色有感)
<차방한담> 유색유감(有色有感)
  • 금태동
  • 승인 2017.09.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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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시인>

형체를 띠는 모든 사물에는 색이 있다. 투명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체나 물과 같은 액상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유의 색을 가지는 것이 보편적이라 할 것이다. 색은 그리하여 사물에 대한 생성과 소멸의 근원적 함수로 작용하며, 색 그 자체의 용존에 대한 인식은 없으나 색을 배제 한 어떤 존재도 인식의 기초를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원색의 강한 톤을 가 졌거나 인식은 곧 존재를 증명하는 힘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였다. 화두(話頭)다. 해석은 간단하게 배웠다. 색(色,존재하는 것)이 곧 공(空,비어있는)이며, 공(空,없는 것) 또한 색(色,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오래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대하였지만 그저 입문을 했을 뿐, ‘색(色)‵ 한 글자에 대한 이해를 근 사십년에 이르도록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였다. 불가해한 일이다.

색은 너무 많이 확대되고 재생산 되었으며, 너무 빨리 변색하거나 탈색하기에 색의 주기율표를 그리기가 난해하다. 다만 색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긋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나마 행이라 하겠다. 인간불행의 시작은 무리한 색의 확장에서부터 기인한다. 자연색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할 시기가 왔고, 자연색을 지키기 위한 학술회의가 열려야 할 때가 왔다. 자연색이란 무엇인가? 인공의 조작에 의한 색의 형성이나 가공되지 아니한 색의 이름이다. 근본적으로 색에 대한 ‘존재’로의 해석의 저변에는 ‘원래 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있음’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소멸된다. 그 과정에 탈색이 있음이다. 그러나 그 탈색의 과정조차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윤회의 법칙을 훼손하지 않는다. 색에 대한 집착과 다툼은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한다.

황금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귀천과 빈부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틀림없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누런 색, 그 색을 다르게 표현할 길이 없어 ‘황금색’이라 하는 것일까? 거기다가 적절히 탐을 내고 싶을 만큼 생산량이 적어 희소성을 더하니, 색을 지배하던 인류가 어느 사이에 색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황제는 황금색 옷을 입었고, 황금색 두건을 쓰기를 즐겨 하였으며, 장신구를 같은 색으로 장식하여 왔다. 지혜와 용기, 권위와 관록, 힘 또는 권력 이런 것들은 색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데 이것을 매우 많이 가진 자들 스스로가 색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흰색도 색이요 검은색도 색이다. 여기서부터 비롯한 흑백논리는 또한 얼마나 많은 소모적 논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하였는가? 색의 근원은 물과 공기와 빛에 의하여 빚어진 무형의 산물이다. 색과 공, 실상과 허상, 존재와 부존의 관계를 규정 하는 색의 확장을 저어하며 오래되어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연유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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