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애완견 별이
<차방한담> 애완견 별이
  • 금태동
  • 승인 2017.10.16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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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시인>

가을날 흩날리는 낙엽이 부토가 되어 토양을 기름지게 하듯이 작고 초라해 보이는 사물조차 제각각의 역할이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때로는 성가시고 불편하여 가까이 하기를 경계하는 일도 있겠지만, 환경이 변하고 정서가 변화하면 싫던 것이 또 친밀감을 느끼게도 되는 것인가 보다. 우리집 애완견 별이가 그렇다. 별이는 12년 된 수캉아지 시추다. 이웃에 사는 지인이 생후 한 달쯤 하여 키워 보라며 분양받은 세월이 10년이 훨씬 넘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정착민으로 살면서 농경사회를 이루어 온 민족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름진 평야나 옥토가 그리 많지 않은 탓에 농작물의 수확 또한 충분하지 못하였다. 옛날 마을에 소 두 마리가 있으면 부잣집에 속했다. 소 뿐 만이 아니라 돼지며, 염소, 닭이나 오리, 토끼 등의 가축은 개와함께 주요한 재산이었으며, 가난하게 사는 우리 민족의 주요한 영양원이었다. 가축 중에서도 개는 낯선 사람이 찾아 온 것을 알려주는 집지킴이 역할을 하였고, 가축 중에서도 영리한 축에 속하여 때로는 주인의 충직한 비서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며, 어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동네 집집마다 한 두 마리씩 키우던 그 많던 똥개는 요즘 보기가 힘들어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런데 요즘의 애완견은 집을 지키는 역할도 가난한 사람들의 영양원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얻어먹으며 그냥 여벌로 커 주는 개도 없다.

몸집이 커갈수록 매매가격이 떨어지는 것 또한 부수입을 만드는데 걸림돌이다. 그런데도 애완견을 키우는 집이 날로 증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산업화 사회로 변모 해 가는 과정에서 눈에 띄게 변하는 사회현상은 핵가족의 가속화 현상이다. 기껏해야 서너 명이 사는 도시가정의 구성원은 제각기 분주함이다. 마을버스 정거장에 마중을 나오는 한가로운 엄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은 함께 고민해야할 공통분모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아야 하고, 아버지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며, 자녀는 손안의 폰에 빠져 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계좌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어 입금하면 역할이 충분하였고, 그것은 다만 역할일 뿐 가족에게 존경받을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보온 밥솥에 먹을 만큼의 충분한 밥과 반찬을 준비하여 떨어지지 않게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가 입원을 하고 있어도 봉사활동으로 고아원을 다녀와야 점수를 보탠다. 현대 가정에 아버지는 없다. 예식장에서 혼주자리를 지켜 줄 양친이 있을 뿐이다.

우리집 애완견 별이는 바쁘다. 티브이를 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다가는 부리나케 거실로 뛰쳐나온다. 바둑을 두는 아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매달리며 낑낑거린다. 신문을 말아서 매질을 하려 하면 뒤뚱거리며 달아나다가 다시 꼬리를 치며 매달린다. 밥을 줘야 바둑을 계속 둘 수 있다. 배가 부르면 방문을 열어 달라고 한없이 문짝을 긁어댄다. 이유는 없다. 같이 놀아 달라는 의사 표현이다. 크고 작은 인형을 집어던지면 쏜살같이 쫒아가 물어온다. “다시한 번 던져봐! 또 물어 올께!” 라고 하듯이 네발을 동동거린다. 속이 상하여 발로 걷어차면 식탁을 한 바퀴 돌아와 다시 꼬리를 흔들며 매달리는 모습에는 증오도 두려움도 반항도 걱정도 없음이다. 애완견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심리 속엔 그 수양의 깊이를 사랑하는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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