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한 발 늦었네요”
<이재구 칼럼>“한 발 늦었네요”
  • 이재구
  • 승인 2017.10.3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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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구<변호사>

우연히 지인과 얘기를 하던 중 자신이 거래하는 회사가 부도가 나서 몇 천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돈을 받으려고 재산을 찾아 가압류 신청을 하였는데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 설정등기가 있어서 경매를 하더라도 돈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1순위는 은행 대출이고 2순위로 근저당이 설정되었는데 가압류 신청 하루 전에 등기가 먼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제가 한 발 늦었습니다.” “제가 먼저 근저당을 해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누군가가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 것 같습니다. 설마 가짜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돈까지 떼이게 생겼으니 큰일이라고 걱정하였다.

“시점을 보니 분명 사해행위네요. 근저당권을 말소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해행위 취소에 대하여 설명했다. “돈 받을 사람이 여러 명인데 그 중 한명에게 특별히 근저당권을 설정해 우선권을 준 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돈을 받을 수 없도록 재산을 빼돌린 것과 같잖아요. 사해행위라고 주장하면 근저당권을 말소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는 것이 채무자의 권리이고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한발 늦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

채권자들이 가압류를 하기시작하자 급하게 근저당한 것 자체만으로도 채무자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볼 수 있고, “한 발”의 차이로 가압류, 근저당권이 설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해행위임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부도가 나기 오래 전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돈을 빌려주었다면 사해행위가 되기 어렵다. 이미 돈을 빌려주었거나 받을 돈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여 채권자들이 가압류를 할 움직임을 보이자 급하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였다면 채무자의 상태가 어려운 것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채무자가 근저당권을 우선 해 준 이유는 친척관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악덕 채권자로서 평소 독촉을 하여 시달린 사람일 수도 있다. 또는 사기로 고소당할 위험이 큰 채권자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근저당권이 말소되면 그 채권자가 더 손해를 볼 수 있다. 한 발 늦어서 더 이익을 보는 사례는 또 있다.

계주와 계원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계주가 도망가는 일이 종종 있다. 계가 깨지게 되면 계원들은 계주를 찾아가 계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계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채권을 그 계원들에게 양도해 준다. 그러면 다른 계원이 한 발 늦었다고 땅을 치고 후회한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한 발 늦은 채권자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한 발 늦은 채권자는 자신을 왕따 시키고 한 발 앞서 채권을 양도받을 다른 채권자들을 상대로 사해행위를 주장할 수 있다. 채무자가 양도해서 처분한 채권은 원상복구 되어야 한다. 만약 양도받은 채권을 변제받아 다 써버렸다면, 원상복구 할 채권이 없기 때문에 변제받은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 이 때 한 발 늦은 채권자는 그 돈을 직접 자신에게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 발 늦은 계원은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통하여 양도한 채권 금액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게 된다. 남들보다 먼저 앞서간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발 늦게 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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