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황 작가의 부고
<차방한담> 황 작가의 부고
  • 금태동
  • 승인 2017.11.27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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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동<시인>

서울 용산의 D증권 지점장실을 방문했던 것은 십여 년 전 즈음이다. 내가 주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황 지점장이 나와 같이 고수보이차(古樹普洱茶) 생차(生茶)를 하는 흔치 않은 지인이었고, 주로 내 차실을 방문했지만 “지나는 길이 있으면 한번 다녀가라.”는 청이 있었기에 방문한 기억이다.

종이컵에 커피 한잔을 놓고 조금의 담소를 나눌 것이란 일상적인 생각을 벗어나 그는 바쁜 여직원에게 더운물을 끓여오게 시켜서는 탁자 위로 다구를 펼치고 내게 순도 높은 보이차를 우려 대접하였다. 분위기로 보아서 내게만 특별히 그렇게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분이 스스로가 보이차를 즐겼고 손님과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모임의 일원으로 함께 했던 그가 어느 날 내게 두툼한 서류봉투를 들고 찾아와서는 주억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쓴 글인데 한번 보아 달라는 청이었다.

그 분의 원고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동서고금의 이야기를 채록하여 쓴 금언록(金言錄)이었다. 그가 자신이 없어했던 것은 스스로 쓰기는 했지만 지면에 발표를 하거나 책을 내어본 경험이 전혀 없어서 내게 자문을 구한 것인데, 그 분의 고민대로 글을 이끌어 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많아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정을 이끌어 주었다. 타고난 열정과 감각이 있던 분이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멀다 않고 달려와 글쓰기와 출판, 문단의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서강대학교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초청장을 보내 왔다. 대단했다. 그날은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지만 그 큰 강당은 축하객들로 가득 찼다. 문단의 원로작가 몇 분도 눈에 띄었고, 지금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인 박원순 씨도 축하객으로 참여를 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벌인 일산 킨텍스에서의 출판기념회를 TV 뉴스로 지켜보았던 것을 빼고 내가 본 가장 화려하고 큰 출판 기념식이었다. 그는 그렇게 화려하게 작가로 데뷔하였다.

이후에 모 전문지에 그의 기고가 지속적으로 게재되는 것을 감동적으로 접하기도 하였고, 두 번째, 세 번째 저서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노조위원장을 지낸 증권맨으로써 소신이 뚜렷하고 언변이 좋았으나 술자리에서 남들이 기고만장하게 떠들 때는 끝까지 경청을 하는 자세가 선비였다. “차 한 잔 주세요!” 하며 뜬금없이 내 다실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을 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물으면 거침없이 토해내는 그 분의 야성을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6선 의원을 지낸 중진의 가까운 인척이어서 때론 크게 도왔지만 노선을 달리하여 야당후원회에 뚜렷이 자신의 이름을 걸기도 했던 황 작가는 서울에 남고, 나는 원주로 온 이후 간간이 안부를 묻는 관계로 남았지만 그의 사람을 좋아하는 친화력이 멀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증권사 지점장을 명예퇴직 하고 건강음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수십 억 원을 손해 본 이야기도 들었고, 이후에 인사동 어느 외진 건물 2층을 임대받아 식당을 운영하는 곳에 가보기도 하였다. 그 식당은 지나가던 사람이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오는 경우는 적었고 대부분의 고객은 그의 지인들이 찾는 아지트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세상 일 중에 가장 중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다. 보이찻집을 했다면 그의 생계가 곤란 했을까? 식당을 찾는 지인들과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며 벌건 얼굴을 하고 있을 그를 나는 상기한다. (사)아시아문화경제 진흥원 강성재 이사장이 매년 진행하는 서울가든호텔 교류행사에서 황 작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제 황 작가의 부고문자를 받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황 작가의 부친이나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의 오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였더니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하루 종일 허허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 속으로 비가 내린다. 오늘은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차인이 차를 끊고 술을 하다가 간암 말기로 가다니 이 사람아!” 잘 가시게, 담에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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