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라이터돌
<차방한담>라이터돌
  • 금태동
  • 승인 2018.01.15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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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시인>

사십년 전 즈음 내 어린 시절에는 성냥을 ‘다항’이라 불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항’은 ‘당황(唐黃)’을 이르는 말이었다. 당나라에서 유입된 불을 일으키는 유황이 그 어원이다. ‘성냥’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당성냥’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던 기억이다. 성냥은 요리를 하거나 난방을 위한 군불을 지필 경우, 혹은 곰방대에 불을 붙일 때 반드시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근간에는 가스레인지 버튼을 누르면 전자 불꽃이 자동 점화를 일으키니 생활주변에서 성냥도 거의 사라졌다.

조선시대 반가며느리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일이었다. 꺼진 불을 다시 살려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고 불씨를 꺼뜨려서 불씨동냥을 해야 할 경우 가세가 기우는 화근으로 생각했다. 당나라에서 성냥이 도입되어 사용이 보편화되기까지 불씨 때문에 겪었어야 할 조선 여인들의 고뇌 또한 컸으리라.

불을 일으키는 가장 손쉬운 도구가 성냥이었다면 아마도 성냥의 가장 많은 용도는 담배에 점화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담배로 하여 라이터 산업의 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냥은 휴대가 불편하고 기후에 민감하여 눅눅해지면 불을 일으키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미군들에 의해 유입된 지포라이터는 중년 신사들이 선호하는 꿈같은 선물이었다. 단추 구멍에 쇠고리 줄을 매달아 조끼 주머니에 걸쳐 넣고 유유하게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뚜껑을 딸까닥 하고 닫는 모습은 폼이 났다.

적군 탱크에 휘발유 병을 투척 후 지포라이터에 불을 일으켜 던져 폭발시킨 전설 같은 이야기는 지포라이터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80년대 일회용라이터의 출현은 가히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휴대가 간편하고 가볍고 사용이 편리했으며, 저렴하거나 무료로 획득할 수 있고 쉽게 분실하여도 별로 아깝지 않았다. 이런 저런 편리함으로 일회용라이터를 수십 년 간 써 왔다.

근년에 친하게 지내던 식당 주인이 내게 건너 준 지포라이터를 사용하면서 나 홀로 복고형 라이터 불꽃에 심취해 버렸다. 심지를 태우며 타오르는 불꽃은 그 자태가 아름답고 편안함을 주었다. 이 불꽃에 마음이 잦아들자 일회용라이터의 불꽃은 한 순간에 격이 낮아 보였고 혹은 천박하게까지 다가왔다. 라이터돌이 다 닳은 어느 날의 고민이 나름 컸다.

휘발유를 구입했던 가게를 방문하여 라이터돌을 파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가볍게 웃었다.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 왔다. 아무렇게나 뒹굴던 일회용라이터를 다시 쓰면서도 골똘하게 라이터돌을 수급 할 방법을 고민했다.

 의외로 쉬운 곳에 답은 있었다. 라이터 몸통을 분리하여 휘발유 주입구가 있는 패드를 들추어 보았더니 이게 웬일? 거기에는 사용한 적이 없는 위풍당당한 신형 라이터돌 한 알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작은 생명 없는 돌 하나의 발견이 가져다주는 순간적인 기쁨이 적지 않았다. 그깟 라이타돌 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귀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발하는 양초를 거울삼아 희생을 이야기 한다. 이제라도 교훈의 중심은 라이터돌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라이터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친 쇠바퀴 돌기에 몸을 갉아내는 희생을 감내하며 불꽃은 피우다가 마침내는 형체 없이 사라진다. 양초는 전깃불에 밀려 사라졌지만, 라이터돌은 천대받는 일회용라이터 몸통 속 핵심 부품으로 온 몸을 던지며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사람으로 일생을 살면서 라이터돌 하나만큼의 역할이라도 하고 떠날 수 있을까를 고뇌하여 본다. 그나저나 신년벽두에 나는 또 한 번의 위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나의 지포라이터가 내 나이 오십 중반에 애용하던 지포라이터란 이름의 유품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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