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평화의 소녀상 잊지 말자
원주평화의 소녀상 잊지 말자
  • 김대중
  • 승인 2015.08.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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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777.jpg▲ 김대중<언론인>
 

 1992년 1월8일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시작된 의미있는 날이다. 반면 또 하나의 국치(國恥)일이다.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국권이 상실돼 일본 제국주의에 식민지가된 날에 못지 않은 치욕의 날이다. 광복이 되었지만 국가가 여전히 제 역할을 못해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성노예가 됐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배상은 커녕 사과 한마디 조차 받지 못했다. 위안부 피해 할 머니들에게 광복후 70년은 멈춰 버린 시간이다.

첫 수요집회후 1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날 시작된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 날인 2011년 12월14일 서울 광화문 일본 대사관앞에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이 세워졌다. 다시 4년이 지난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는 8월15일 원주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된다. 지난 7월27일 원주시청 시청공원앞에 완공됐다. 원주 평화의 소녀상 건립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이뤄낸 결과다. 시민들이 스스로 나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정성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1992년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본격적으로 제기됐으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인륜적인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가해자 일본의 태도는 하나도 변한것이 없다. 일본군 성노예 사실 자체에 대한 부정과 역사왜곡이 변함없이 되풀이될뿐이다. 아니 오히려 부정과 왜곡의 정도가 더 심해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민국은 분노하고 있다. 전세계가 공분하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미국내 일본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 허버트 빅스 빙엄튼 뉴욕주립대 명예교수는 얼마전 국내 유력 일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 역사왜곡의 뿌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지 않은 도쿄전범재판이 시작이다. 1946~1948년까지 열린 도쿄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전총리를 비롯한 7명의 전범이 교수형에 처해지고 16명이 종신형을 받았다. 그러나 배후 조종자 히로히토 일왕에겐 전쟁에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전범재판후 일본인들은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없다면 일본 국민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됐다” 일본은 천황의 나라 황국이고 국민은 스스로를 신민(臣民)으로 여긴다. 천황이 무죄니 당연히 그 신민(臣民)은 무죄라는 논리다. 일제 강점기때 우리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전혀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역사 부정과 왜곡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왕 히로히토는 왜 무죄가됐을까? 연합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전후 일본을 미 통제하에 두고 국가안정과 수월한 관리를 위해 상징적 국가 지도자가필요해 그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원주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염원과 다짐이다. 또 하나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다.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선생의 ‘역사를 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잊지말고 기억하자는 맹세이다. 한국인들은 유난히도 망각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일본 강점기이고 그중 위안부 문제다. 원주시청앞 평화의 소녀상이 치욕의 역사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맺힌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 땅 여성들의 아픈 역사에 대한 영원한 기억이 되길 바란다. 원주시민들이여 어느 지역보다도 더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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