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자년, 화려한 외피보다 내실에 더욱 충실하자
〔사설〕경자년, 화려한 외피보다 내실에 더욱 충실하자
  • 원주신문
  • 승인 2019.12.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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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업, 장대한 비전과 초라한 현실의 부조화 확인
시민들, 경천동지할 프로젝트가 아니라 질감있는 삶 원해
“실체와 허상의 갈림길에서 섬세한 선긋기 절실”
△비로봉 전경 [사진=김정순 작가]
△비로봉 전경 [사진=김정순 작가]

기해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줄달음쳐온 올 한해는 그 어느 때보다 좌절과 희망이 극명하게 교차했던 한해였다.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거대 프로젝트는 더욱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옛 미군기지 캠프롱 반환 확정이 그렇고, 학성동 호수공원 국책사업 확정이 그렇고,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이 그렇고, 너무 많다보니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벅차다. 이게 성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활기찬 아우라에 압도당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실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화훼단지 조성사업은 스텝이 꼬일 때로 꼬여 사실상 산소호흡기를 꽂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모양새다. 또 하나.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난 20대 총선을 앞둔 이맘때쯤 발표된 지정면 일대 2,640만규모의 글로벌테마파크 조성사업은 출발만 요란했지 감감무소식이다. 푸른 눈과 검은 피부의 외국인들이 간담회에서 직접 발표하다 보니 곧이 곧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지만 역시나 요란한 빈수레였다. 손잡이 없는 맷돌처럼 돌아가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이 사업에 대해 뭐라 떠들든 시민들은 이젠 콧방귀만 뀌고 있다. 자칫 훗날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기초 체력을 도외시한 채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식으로 외형적인 규모에 집착해 추진하다 지체와 정체 현상을 반복하는 사업을, 그리고 모든 사업이 단기간내 속전속결로 이뤄지지도 않거니와 투자환경은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해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봐왔고 몸으로 체험했다. 장대한 비전과 초라한 현실의 부조화만 두 눈으로 또렷이 확인했다. 미완으로 끝나 희망목록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우리의 머리를 감싸고 있다. 기해년은 희비 명암이 스틸사진처럼 각인된 한해였다.

경자년 새해는 쥐의 해다. 쥐는 다산, 번식이 탁월하다. 작금의 개발 논리로 따지자면 다산·번식=사업의 확산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가늠할 성장의 엔진을 요소요소에 갖추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문화적인 면에서, 복지적인 측면에서, 수많은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다 보니 개발의 병목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더욱 암울한 것은 우리 사회를 휘감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병의 고착화, 침체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제 상황, 더 나아가 경기침체는 국내적 상황을 넘어 미중,미북,한일 등 글로벌 파고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든 우리를 더욱 옥죌 수 있다.

희망은 묘약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쫓는 희망이 자칫 환상이 되고 더 나아가 허상이 된다면 실망은 밀물처럼 몰려들 것이다. 실체와 허상의 갈림길에서 이젠 섬세한 선긋기에 나서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경천동지할 화려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바로 질감 있는 삶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과도한 프로젝트는 현실을 고려해 적절성을 따져 재조정해야 한다. 포기는 융통성 있는 자각이자,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지혜라고 했다. 쓸데없는 잔가지와 불필요한 욕심을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더 현실적이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게 일로매진(一路邁進)하자.

경자년은 직진만 가능한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때론 좌회전, 우회전해서 눈 앞의 오솔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음도 즐기며 호흡을 가다듬는 여유를 느끼는 것도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화관광도시를 기치로 내건 원주시. 힘에 부치는 버거운 과제는 엄한 잡도리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일엽장목(一葉障目)의 단견에서 과감히 벗어나자. 이게 지역의 미래를 위한 거보(巨步)의 첩경(捷徑)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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