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지도자의 덕목은?
[살며 사랑하며] 지도자의 덕목은?
  • 임길자
  • 승인 2019.12.29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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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다른 새들이 볼 때는 그리 뛰어난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 나름대로는 남달리 우아하고 특별하다고 자만심에 도취돼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하루는 그 까마귀가 운 좋게 사냥한 고깃덩어리 한 점을 입에 물게 되었다. 드디어 나뭇가지에 앉아 맛있게 먹으려고 할 때였다. 지나가던 여우는 그 광경을 보고 고기가 먹고 싶어 군침을 질질 흘렸다. 꾀 많은 여우는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고기를 뺏으려고 잔머리를 굴리며 까마귀에게 말했다.

어쩜 당신은 예쁘고 날씬한데다 아름다운 깃털까지 지녔어요. 당신 같은 아름다운 까마귀는 정말 난생 처음 봐요. 당신의 목소리도 외모만큼이나 아름답다면 당신은 새 중의 가장 아름다운 새가 아닐까 싶어요.” 귀가 얇은 까마귀는 여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여우의 말대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는 고기를 물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입을 크게 벌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입에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는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여우는 기다렸다는 듯 땅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잽싸게 주워 입에 물고 신이 나서 크게 웃으며 도망쳐 버렸다. 이때 까마귀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허망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또 여우의 거짓 칭찬에 놀아난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꽤 여러 날 몹시 속상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년 말이 턱밑에 와 있는 즈음에 지난 일상을 잠시 점검해 본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카리스마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이 막스베버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카리스마에 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베버에 의하면 국가나 정치 단체는 정당한 폭력행사가 지지하는 지배관계에 의해 질서가 잡혀 있다. 그때 지배자가 주장하는 권위에 피지배자가 복종하는 현상에 대하여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영원한 과거가 갖고 있는 권위, 즉 먼 옛날부터 통용되어 온 어떤 풍속을 계속 지키려는 습관적인 태도로 인해 신성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낡은 형태의 가부장이나 세습 군주가 행하는 전통적 지배를 가리킨다.

두 번째는 어떤 개인의 비일상적인 천부적 자질(카리스마)이 갖고 있는 권위, 즉 개인의 계시나 영웅적인 행위 또는 그 외의 지도자적 자질에 대해 인격적으로 완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에 기초하는 지배로서 정치영역에서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 또는 정당 지도자가 행사하는 지배가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합법성에 의한 지배즉 제정 법규의 타당성에 대한 신념과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규칙에 의거한 객관적인 권한을 기초로 한 지배로, 오히려 이때의 복종은 법규가 명하는 의무이행자의 형태로 실행되므로 근대적인 국가 공무원이나 그와 유사한 권력자들이 행하는 지배가 모두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가 있다면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고 구동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대가나 벌칙을 정한 규칙이 아니라, 피지배자들의 자발적인 동기, 즉 지배자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해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므로 번거로운 규칙 따위는 오히려 없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지배되도록하려면 역사적 정당성이나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것이 베버의 주장인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속성을 갖춘 지도자가 무척 드물기 때문에 조직의 수, 즉 수요에 비해 공급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베버의 정의에 다르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는 천부적 자질을 지닌 인물이므로 흔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흔하지 않은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를 인위적으로 키워내는 일에 도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기해년이 저물어 간다. 우리 모두가 준수해야 할 법()과 원칙(原則)이 균열과 얼룩으로 생명을 잃은 채 곳곳에서 저마다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고 있다. 무엇이 다름인지? 무엇이 틀림인지? 누구 옳은 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억지를 쓰고 있는지? 어느 쪽이 원칙을 깼는지?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 누구에 의한 결정이었는지? 유난히 삭발과 단식과 장외 투쟁이 많았던 정치인들의 명분없는 몸부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의 덕목은 그리 요란한 것이 아니다. 그냥 맘 착한 이들에게 내일은 언제나처럼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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