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1년, 그 하루하루
[세상의 자막들]1년, 그 하루하루
  • 임영석
  • 승인 2020.12.06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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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새봄 새순을 움 틔워 가지를 뻗는다. 그리고 그 가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해마다 이런 반복된 과정을 거쳐 고목의 나무가 되어간다. 속을 텅 비운 고목이라 해도 가지 끝은 싱싱한 줄기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몸도 다를 바 없다. 나이가 들면 삶의 지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고, 젊은이들은 젊은 혈기로 살아간다. 세월은 그렇게 하루하루 다르게 사는 듯 보여도 나뭇가지에 새잎 돋게 하고 가을이면 그 잎 다 떨구고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그런 시간은 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1년, 그 하루하루는 다 같은 삶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살아온 삶의 시간을 어떻게 정리하고 마음속에 담아 놓느냐에 따라 다시 맞는 시간은 다를 것이다. 나는 늘 글을 쓰겠다는 친구들에게 “일기를 써라.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보라. 책을 손에서 놓지 마라”라고 말을 한다. 가장 쉬운 일인 듯 보여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일기를 쓰는 일이다.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힘들 것이다. 

삶이라는 깃발은 누가 매달아 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자신의 삶에 깃발을 매일매일 매달아 놓아야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다. 그 삶의 깃발을 어디에 꽂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길이 보일 것이다. 이 세상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자기 삶의 깃발을 꽂으려 하는 이는 그 높이를 향해 걸어가는 고통을 즐길 것이고, 낮은 산에 깃발을 꽂고자 하면 큰 고통 없이도 깃발을 꽂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평범하다면 그 깃발을 바라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1년이란 시간, 그 하루하루는 날마다 자기 삶의 시간을 바라보고 다듬고 정리해야 더 뜨거운 삶의 시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순정을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르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標)ㅅ대 끝에 /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시 ‘깃발’ 전문-

요즘 낭만이 없고 감정이 메마르고 삭막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그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구조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최소 2m 이상 떨어져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 처한 현실이다. 언제 사람의 삶이 더 가깝게 더 뜨겁게 더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주고 앉아주고 손잡아 줄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보다 더 앞서가야 하고, 더 많은 시험 점수를 맞아야 삶이 윤택해진다고 믿고 산다. 앞서가는 것만 배우고 이기는 법만 배우다 보니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둠의 빛이 부정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어둠은 소외되고 외로운 자의 가슴을 품는 커다란 우주다. 하느님이다. 부처님이다. 공자이고 소크라테스고, 우리들 마음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곳이다.

1년이 다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쉽다는 말은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유치환 시인의 시 ‘깃발’처럼 우리들 삶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리고 외롭고 쓸쓸한 자기만의 독백을 하며 살아간다. 맨 처음 공중에 깃발을 달 줄을 안 그는, 아마 우리들 삶을 잘 아는 분일 것이다. 1년, 하루하루 매일매일 지켜보신다. 1년이라는 새로운 마디를 묵어야 하는 시간이다. 어떤 일에도 꺾이지 않는 삶의 시간을 그 마디에 묶어 놓아야 다음 해가 더 빛날 것이다.

1년, 하루하루가 모래알 같은 시간이지만 그 모래알들이 쌓여 사막을 만들고 세상의 잡초를 몰아내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12월은 내 삶의 깃발이 튼튼히 매달려 있는지, 그리고 세상 바람에 잘 펄럭이며 즐겁게 살아가는 맛을 확인해야 할 시간이라고 본다. 코로나19로 거리를 두라고 하지만 마음만큼은 더 가까이 찾아가 서로가 서로의 나부끼는 삶의 깃발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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