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운진 作 / 마음의 체급
[시가 있는 아침]이운진 作 / 마음의 체급
  • 임영석
  • 승인 2020.12.20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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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체급

-이운진 作

 

친구랑 싸우고
괜히 고집을 꺾기 싫어
짐짓 더 화가 난 척하던 날

나무가 햇살이 앉을 자리를 비워놓듯
친구가 내 자리를 비워놓고
점심을 먹는다

구석에 혼자 앉아
맛없는 밥을 먹다가
흘깃 쳐다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라
눈길을 피하는데
가만히 웃어주는 친구

키는 내가 훨씬 큰데
마음의 키는 친구가 몇 배 더 큰가보다

식판에 고개를 박고
부끄러움을 감추며
마음에도 체급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운진 시집 ‘셀카와 자화상’, ‘달아실’에서

 

 

이제 시도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장르가 구분이 되는 시대인가 보다. 아이들이 읽으면 동시, 청소년이 읽으면 청소년시, 어른이 읽는 시 등으로 구분을 해야 하는 세상인가 보다, 굳이 그렇게 나누는 이유가 있다면 시를 접하는 마음의 체급이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읽어보는 시 ‘마음의 체급’은 바로 청소년기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마음의 크기도 재보고 서로 용서를 해 주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상은 마음의 크기로 재 보아 작다고 생각하면 업신여기거나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의 세상은 냉혹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의 마음만큼 변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물은 항상 그 물로 존재하고, 산은 항상 그 산으로 앉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만 변화가 될 뿐이다. 그러니 그 변덕이 얼마나 심할까 싶다. 소나무가 소나무의 생각을 버린 적 없다, 향나무가 향나무의 향기를 버린 적 없다. 야단법석을 떠는 건 언제나 사람뿐이다. 자연의 변화는 눈으로 바라볼 수 없으니 읽을 방법이 없다. 코로나19도 그렇고, 세상 저 잘났다고 삿대질하는 난봉꾼들은 여전히 그 난봉질에 재미를 들인 모습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의 체급도 구분이 된다면 사람의 얼굴은 악마처럼 생긴 사람들이 반은 될 것이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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