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2020년 겨울의 무게
[살며 사랑하며]2020년 겨울의 무게
  • 임길자
  • 승인 2020.12.20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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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며칠 전 첫눈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다행히 내리면서 일부 녹긴 했지만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져 응달진 골목길은 아직도 얼음판이다. 도내 스키장들은 인공 눈을 뿌리며 손님 맞을 채비를 하다가 흠뻑 내려준 첫눈이 몹시 반가웠을 것이다. 계절이 선물한 눈덩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은 어느새 동심(童心)이 되었다.

지난 3일 서울에서 발달장애아들을 둔 60대 여성이 숨진 지 수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36세 아들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등록이 돼 있지 않아 적절한 치료 및 보호를 받지 못했다. 숨진 엄마는 2005년 뇌출혈 수술 기록이 있었고, 엄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주거급여) 대상자)로서 월 25만 원 남짓과 간간히 일용근로자로 생계를 꾸려갔던 모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병사(病死)로 판단한 모양이다. 모자(母子)가 살고 있던 집 벽에는 밀린 전기세 독촉장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행정기관에서 지급되었던 마스크 박스는 주인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문 앞에 방치되어 있었다. 10년이 넘게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한 장기 체납자였다는 말에 더 기가 막혔다. 복지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촘촘하게 세웠다던 정부 정책들은 어디서 누굴 위하고 있을까? 전기세가 밀려서 전기가 끊어졌으면 해당 기관에서 한 번쯤은 살폈어야지.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를 10년이나 체납한 수급자를 왜 그대로 방치했을까?

며칠 전 전화를 받고 어느 가정을 방문하였다. 13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서 구순의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남편은 “며칠 전 집사람이 화장실에서 넘어졌어. 처음엔 기어 나오며 괜찮다고 하더니 이내 눕는 거야. 억지로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엉치뼈에 실금이 간 것 같은데 입원을 하라고 하는 걸 그냥 집으로 왔어. 어차피 병원에서도 별다른 치료가 없고 그냥 누워있을 것 아니야. 내가 조금 더 꿈적거리면 되겠다 싶어서… 사실은 병원비, 간병비도 걱정이 되었고…” 노인은 자신의 경제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아내의 병간호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이 노인들에게는 세 명의 자녀들이 있고 그들의 재산 때문에 기초사회보장 범주 내에 들어오지 못한 채, 국가에서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셨다. 현재로서는 자녀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자녀의 연락처를 묻자, 노인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오늘은 이만 가시게. 내가 나중에 애들한테 연락해 보고 다시 전화하리다”라며 입을 닫으셨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정책 과제’라는라는 보건사회 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중하위소득 40% 이하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7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비수급 빈곤층 중에는 부양의무자에게 심리적·물질적 피해가 가지 않을까 우려해 급여를 신청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빈곤함에도 기초보장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다. 가족들이 여기저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복지정책이 아무리 촘촘해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복지사각지대는 계속해서 생산될 것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그동안 분주히 사느라 잠시 잊고 있던 이웃도 좀 살펴보고, 모두 다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기부금도 좀 내 보고, 길을 가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계를 발견하면 솔선하여 치우기도 하면서 겨울을 설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과 갈등은 여전히 세상을 흔들고 있다. 2020년 겨울의 무게가 더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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