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우걸 作 / 시
[시가 있는 아침]이우걸 作 / 시
  • 임영석
  • 승인 2021.01.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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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걸 作

무릇 시란 정신의 핏빛 요철凹凸이므로
장님도 더듬으면 읽을 수 있어야 하리
집 나간 영혼을 부르는
성소의 권능으로

얽힌 말의 실타래 같은
이미지의 굴레 같은
그 터널을 절뚝거리며
내 독자는 걸어 왔구나
그러나 양파 속이여
아 들어날
허방이여.

 

이우걸 시집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 《천년의시작》에서

요즘 나는 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한다. 많은 시인들이 詩가 무엇이냐라는 말에 많은 답을 내놓았지만, 수많은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그 답이 답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우걸 시인의 시 「詩」라는 작품을 읽어본다. '시란 정신의 핏빛 요철이므로 / 장님도 더듬으면 읽을 수 있어야 하리'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시인이 살아온 삶의 길이 시가 되어야 할 것이고, 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이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 아닌 시를 쓰고 시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를 쓰고 시를 쓴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다는 바다다운 수평선이 생명이고 하늘은 하늘다운 허공의 높이가 있어야 하늘이라 할 것이다. 세상 사람의 삶을 보면 누구는 고관대작으로 살아가고, 누구는 거지꼴도 면하지 못하고 산다. 그렇다고 거지로 사는 사람이 고관대작의 삶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을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는 그 상대가 되지 않고서는 그 가치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가 100년 후면 아무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100년 후,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시라는 가치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삶의 가치도 과거를 뒤돌아볼 때 미래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살아온 핏빛 요철 같은 삶의 걸음이 100년 후에도 시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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