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윤준경 作 / 슬퍼도, 봄
[시가 있는 아침]윤준경 作 / 슬퍼도, 봄
  • 임영석
  • 승인 2021.02.21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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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도, 봄

-윤준경 作

 

식음을 놓칠 걱정도
자고 나면 길이 되었네

누리장꽃 같은 생의 향기가
이따금 사는 이유를 물어오지만
둥지에서 밀려난 붉은머리오목눈이도
알몸으로 이 강을 건너야 하리

뻐꾹새 기쁜 듯 울고 간 한나절
날은 차츰 쉬 어두워오고
절망을 뒤집어 싹을 틔우면
슬퍼도, 봄

산도 강물에 두 발을 담그고
제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네

 

윤준경 시집 『슬퍼도, 봄』, 《시선사》에서

 

 

사람의 마음도 젊어서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점차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길들여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면서 그 흐름이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윤준경 시인의 시집 『슬퍼도, 봄』은 시인이 살아온 삶의 과정이 수십 번 봄을 맞고 보내면서 세월을 담아 놓은 풍경이 "슬퍼도, 봄"이 한마디로 요약되는 삶이 담겨 있다. 먹고사는 걱정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던 세상도 그 삶의 모습을 지나고 나면 하얀 돌인지, 검은 돌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산도 강물에 두 발을 담그고 / 제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네"라며 아쉬움이 깃들어 있다는 마음속에서 한 생의 그림자가 어느 능선을 지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두문불출하고 살아서 그런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윤준경 선생님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치악산 산속나무 한 그루를 눈에 담고 살다 보니 세상 나무가 다 그럴 것이다고 이해를 해도, 산과 나무의 관계만큼이나 많은 사정들이 얽혀 있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부정의 긍정을 마음에 들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삐뚤어진 나뭇가지 하나 때문에 세상이 다 삐뚤어졌다는 생각을 버리려 한다. "슬퍼도, 봄"은 바로 그런 삶의 슬픔까지도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을 묵시적으로 알려주는 시집이라 생각된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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