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어머니의 식욕
[이재구 칼럼]어머니의 식욕
  • 이재구
  • 승인 2021.02.21 2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구 [변호사]
△이재구 [변호사]

신림면 구학리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지금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그곳에 혼자 계신다. 연세는 89세이지만 아직은 정정하시다. 토요일이면 가족들과 같이 어머니에게 가는 것이 매주 일과가 되었다.
집에 도착하면 차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문을 활짝 열고 나와 반기신다. 집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동안 바빴는지, 잘 지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본인의 얘기를 시작한다. 
“야 내 말 좀 들어봐라. 동네 이사 온 집에서 우리 개를 묶어 놓으라고 난리다. 그 집에 가서 똥을 싸서 더럽고 그 집 고양이가 도망간다고 하는데 똥은 치우면 그만이지 않냐. 우리 개가 얼마나 순한데 그러냐. 고추 대를 부러뜨렸다고 손해가 얼마인지 아냐고 하는데 그까짓거 얼마나 한다고…”
“00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기분 나쁘지만 참았다.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아플 정도다. 나는 이런 어머니의 잔소리와 불만, 불평을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나에게는 아름답고 건강한 음악소리다. 어머니가 건강하시다는 증거니까.

시골에 갔을 때 평소 같으면 차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내다보시던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있나? 마을에 놀러 가신 것일까?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누워계신다. 간신히 일어나면서 왔냐고 하시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왜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지만 덜컥 걱정이 된다.

최근에 마트에 갔더니 냉동피자가 눈에 띄었다. 모짜렐라 치즈를 추가로 산 다음 냉동피자에 잔뜩 올려 레인지에 돌려 녹이고 팬에 바삭하게 구운 다음 드렸더니 사 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하셨다. 그전에는 피자가 맛이 없다고 해서 사다 드린 적이 없는데 식성이 변하신 것 같다. 그 이후 매주 냉동피자를 사 가지고 가서 토요일 한판, 일요일 한판 만들어 드리는 것이 일이 되었고 마을의 노인들에게도 자랑해서 마을 사람들도 피자를 먹으러 오라고 부르실 정도가 되었다. 

식욕은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위장기능 저하, 후각 노화 등이 진행되고 80세 이상의 80%는 50세 미만과 비교해 후각의 기능이 10%밖에 남아 있지 않아 음식 섭취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고 한다. 

어머니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때문에 항문에서 피가 나는 증세로 스테로이드 약을 10년도 넘게 드시고 있다. 그래서 술은 절대 드시면 안되는데 이웃집에 놀러가면 커피도 드시고 막걸리도 한잔 받아 드시곤 했던 것 같다. 특히 여름철에는 갈증이 나기 때문에 막걸리를 찾으셨다. 그런데 막걸리와 상관없이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가 좋아졌고 약을 안 드셔도 될 정도로 나은 것 같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막걸리를 드실 때가 제일 기분도 좋다고 하시고 노래도 부르시니 어느 날부터는 나도 집에 갈 때마다 막걸리 2통을 사 가지고 들어가게 되었다. 피자를 준비하면 어머니는 막걸리를 꺼내 흔드시곤 한다.

어머니가 식욕이 있고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어머니의 식욕을 돋우는 것은 무엇일까? 맛있는 피자, 막걸리, 물김치가 비결일까? 아니면 보고 싶은 자식이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어머니는 내가 이것저것 사 들고 찾아갔을 때 표정이 제일 행복한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이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잘하려고 정신차렸을 때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다. 부모님의 식욕이 떨어지지 않도록 할 때는 지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