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만해 한용운
[세상의 자막들]만해 한용운
  • 임영석
  • 승인 2021.03.07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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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은 독립 운동가이고, 시인이고, 스님이고,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만해의 삶 면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만해는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6~9세에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며 「서경」 등을 읽고 해독할 정도로 뛰어난 신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14세에 천안 김씨(정숙, 1880년 출생)와 결혼을 하여 한학에 정진을 하게 된다. 만해 나이 18세에 동학의병에 참가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관고를 습격을 한다. 동학의병이 실패로 끝나고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피신을 하여 27세까지 백담사에서 수도를 하다가 스님이 되어 득도를 하게 된다. 30세에 일본을 두루 다니며 신문물을 접하고 불교와 서양철학을 배우고 32세에 돌아온다.

32세에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하여 침체된 불교 유신운동의 선두에 서서 조선 불교의 비시대적이고 비사회적 풍토를 혁신하자고 부르짖는다. 1911년 8월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만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이때 독립군을 해하려는 첩자로 오인을 받는다. 그리고 40세에 1918년 월간 교양잡지 『惟心』을 창간하여 3권을 발행한다. 3·1 운동의 33인 대표로 참여해 1922년 투옥되어 3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다.

만해의 사상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은 1933년 그의 나이 55세에 오랜 독신 생활을 청산하고 兪氏와 재혼을 하고 살며 서울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이란 집을 지으며 조선 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고 북향으로 집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1936년 신채호 선생이 서거를 하자 그의 묘비를 세우기 위해 조선일보의 원고료로 충당하여 세웠다고 전해지고, 1937년 59세에는 독립운동의 선구자 김동삼 선생이 옥사하자 유해를 심우장에 모셔다가 5일장을 지냈다는 인간미 넘치는 애정은 만해의 삶이 얼마나 뜨거운 정이 넘쳤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만해는 그토록 갈망하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4년 67세에 중풍과 영양실조로 입적을 한다. 입적 후, 4일째 되는 날, 염을 하려 할 때 몸이 식지 않아 홑이불을 열고 보니 화기가 돌고 가슴이 훈훈했으나 손발은 찼다고 한다. 그를 화장해 습골 하던 중, 유독 치아만 고스란히 옥과 같이 하얗고 단단했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입을 통해 얼마나 바른말을 하고 살아왔는지를 입증하는 대목이라고 본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 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씌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 시 「나룻배와 행인」 전문

만해를 대표하는 시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등의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 만해 나이 18세에 동학의병에 참여하고, 그 피난처로 백담사에 들어 스님이 되고, 독립운동과 시, 서, 불경에 관한 글을 쓰며 일생을 마쳤다. 세상이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 몸을 얹은 나룻배. 내 한 몸 타고 와 강을 건너면 뒤돌아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만해의 일생에서 나룻배는 조국이었고, 그 조국을 수많은 사람들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만해는 “세상에 만족이 있느냐? 인생에게 만족이 있느냐? 있다면 나에게도 있으리라”라며 삶의 만족을 내 안에서 찾으려 몸부림친 시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참 많은 시인이 이 땅에 태어나 시를 쓰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진정 만해와 같은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의 정신을 가슴에 담고 살고자 하는 시인도 흔하지 않다. 지금도 관치(官治)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보면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처럼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낡아가는 배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지금도 친일에 부역한 예술가를 찬양하고 우러러보는 것을 보면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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