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공예, 혹은 ‘것’에 관하여
[기고]수공예, 혹은 ‘것’에 관하여
  • 이주은
  • 승인 2021.03.14 2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코로나19 광풍으로 몸을 한껏 사리다가 거의 일 년 만에 서울 전시를 보러갔다. 전시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놀랄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유로 더 놀라운 작품을 발견하는 일이다. 모처럼 만난 전시는 예상만큼 좋았고 전시장 모퉁이에서 진행된 ‘전시 속 전시’에 느닷없이 마음을 빼앗겼다.

양면 숟가락
일목이시一木二匙, 일타쌍피一打雙皮

일이 잘 안 풀릴 땐 바닥에 굴러다니는 만만한 토막 하나를 붙들고 세월아 네월아 조각칼을 들이댄다. 어딘가에 숨통을 터주고 싶었다. 술부모양을 다듬고 거기에 오목하게 술잎을 파고 술 자루를 깎다 보면 막혔던 그 뭔가가 뚫릴 때도 있다.
그러나 술부에 술잎을 파는 것으로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술자루까지 괴롭힌다. 술총 끝에 술잎 모양의 홈 하나를 더 파준다. 나무는 가벼워지고, 여유로워지고, 아래위로 숨 쉴 틈이 생겼다. 비로소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하다.
얼떨결에 나무 하나에 술잎이 두 개인 일목이시一木二匙가 완성됐다. 고스톱판에서 말하는 일타쌍피一打雙皮가 이런 것이리라.

숟가락을 나무로 만들고 만드는 김우희 목수는 숟가락에 대한 글까지 함께 전시했다. [목우공방 - 108 나무 숟가락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에 선보인 숟가락들은 굳이 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상징적인 ‘것’들이었다. 굳이 쓰기에는 조금 불편한 나무 숟가락들에게서 김우희 목수의 공예적 절차탁마(切磋琢磨)와 공예가의 수행적 행위도 느껴졌다.

우리의 몸은 뼈와 관절, 살과 혈관 등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지문이라는 유용한 장치가 있어 신은 우리에게 온갖 창조를 허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특히 다른 나라 사람보다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각 나라의 민속품, 공예품, 건축물, 예술품 등이 저마다의 민족성을 반영한다는 점과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것’들은 왠지 모를 품격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고귀함이 있다는 것이다. 김 목수의 경우처럼 작가의 삶과 물건을 대하는 태도,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정신적 과정을 유추하며 그가 만들어 낸 숟가락은 작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물이 될 수 있음을 본다. 또한 우리의 공예품, 민속품, 미술품은 단아한 우리 조상, 우리의 모습, 우리의 내면을 상징한다고 조금은 과장되게 말해본다.

지난해부터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 안에서 스스로 혹은 가족과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도 늘어났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요리도 한다. 그리고 많은 축제와 행사, 교육이 온라인으로 행해짐으로 인해 집으로 배달되는 온갖 키트 상품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키트들은 집으로 배달되고 집에서는 안내 동영상을 보며 우리는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간다.

1차 산업혁명의 기계화, 2차 산업혁명의 제품의 표준화를 지나며 수공예는 비생산적이라는 멍에를 쓰고 잠시 멈춰 섰었다. 하지만 요즘 4차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는 우리를 다시 수공예로 인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수공예 상품 판매 플랫폼인 아이디어스는 2014년에 문을 열어 현재 21,900여명의 작가가 입점하고 있다. 아이디어스의 입점 작가 수와 매출은 수공예 붐의 단편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소비자는 열광적으로 본인의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아내고 수공예품을 소비하고 작가를 팔로우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손을 쓴다는 것, 정확한 관절의 각도와 악력(握力)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무엇을 만들기까지 학습하고 재주를 연마하는 것, 다른 사람의 안녕을 염려하는 마음, 일련의 이 모든 구성요소는 ‘것’을 만들어가는 모험의 일부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