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이광재...몽상가인가, 선각자인가
[비로봉에서] 이광재...몽상가인가, 선각자인가
  • 심규정
  • 승인 2021.03.14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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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이광재 국회의원(원주갑)에게는 혹평 같기도 하고 호평 같기도 한 두 얼굴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바로 몽상가(夢想家)다.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헛된 생각에 곧잘 잠기거나 그런 생각을 즐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만나면 이 의원을 빗대 ‘유토피아적 몽상가’라고 폄하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사실 이광재 국회의원도 이런 꼬리표를 다소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1월 이 의원은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꿈을 이야기하면 저보고 몽상가라고 합니다.”라거나,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몽상가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몽상가는 좋은 것”, “기존 지도를 가지고는 새로운 대륙을 못 찾는다.”라며 자신 있게 답했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이광재’, ‘몽상가’라고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여럿 눈에 띈다.

그는 왜 몽상가란 소릴 듣는 것일까. 필자도 한때 그렇게 봤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실태를 훤히 꿰뚫고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을 내놓거나, 생명의료기기산업에 대한 비전을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제시하거나, 혁신도시 공공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데이터댐 구축 방안을 내놓거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관련 업계,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대응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을 멀찌감치서 지켜봤다. 그는 지금까지 봐온 정치인과는 아주 달랐다.

핵심을 짚는 안목, 탁월한 선견(先見)에 놀랐지만, 다른 한편으론 시대를 너무 앞서 가는 것은 아닌지, 두 가지 모습에서 ‘몽상가=이광재’, 이게 과연 맞는 표현인지 무척 의아했다. 그리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 이상향이 가장 최상급에 있는 정치인이다.”, “이 의원이 주장하는 바는 그리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속엣 말로 되뇌었다. 피선거권을 잃은 10년 동안 나라 안팎을 넘나들며 식견을 넓혀왔고, 연구 활동을 지속해온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필자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안주 감으로 이광재 의원이 거론되면 “마치 화성에서 온 사람 같다”. “지구인이 아닌 것 같다.”라는 농을 던지기도 했다.

공공의 적인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투명인간과 싸우는 것처럼 괴물의 시간과 맞닥뜨리고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과율을 예측할 수 없는 극악한 바이러스가 언제 또 다시 우리 일상을 마구 헤집어 놓을지 모를 일이다. 암울한 미래의 예고편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상식을 뛰어 넘는 혁명적 리더십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다양한 몽상 속에 돌파구를 찾을 묘수(妙案), 묘안(妙案)이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다. 때론 꿈이 망상에 그칠 수도 있다. 낙관과 과신은 위험할 수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실천하지 않는 몽상가’, ‘게으른 몽상가’, ‘관념적 몽상가’이다. 이 의원처럼 거시적인 안목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지닌 ‘이성적인 몽상가’, ‘실천하는 몽상가’, ‘창의적인 몽상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갖춘 몽상가’는 윤활유 같은 존재다.

흔히들 역사는 과장된 희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작금의 상황에서 몽상가 이광재는 상수(常數)다. 이 의원의 비전은 몽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의원은 열정의 rpm을 더 높여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잿빛으로 변해버린 일상이지만, 이광재를 통해 마음속으로 희망의 무지개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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