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번스타인과 괴짜 피아니스트의 협연
[이재구 칼럼]번스타인과 괴짜 피아니스트의 협연
  • 이재구
  • 승인 2021.03.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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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변호사]
△이재구 [변호사]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최고의 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굴드는 22살 때 바흐가 하프시코드 연주곡으로 작곡한 이 곡을 피아노로 변주해서 연주해 대박이 났다. 보통 50분 이상 걸리는 연주를 38분만에 끝냈는데, 빠른 템포로 숨을 쉴 겨를도 없이 연주하였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당시는 리스트,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의 통속적인 화려한 낭만주의 선율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바흐는 낡고 재미없는 구시대 음악가였다. 하지만 굴드는 죽어있던 바흐의 곡을 세상에 다시 알렸다. 당시 녹음한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이다.
그가 연주한 피아노곡을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바람소리 또는 차량 지나가는 소리 같은 잡음이 섞여서 들려온다. 자세히 들어보면 굴드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굴드는 연주할 때 콧노래를 크게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음반사에서는 그 소리를 지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부분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피아노 독주와 달리 피아노 협주곡은 다른 연주자들과 같이 협연하고 지휘자가 전체적인 연주를 조율한다. 서로 다른 연주자들이 같이 화음을 내려면 서로의 의견을 좁혀야 한다. 

미국의 CBS TV에서 1960년 방송한 뉴욕필하모닉과 굴드의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연주가 시작되지 않는다. 지휘자 번스타인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굴드를 피아노 앞에 앉혀 놓고 자신의 설명을 시작한다. 
“18세기 초 작곡가들은 악보에 자세한 연주방법을 기재하지 않았다. 그냥 빠르게(알레그로), 부드럽게(피아노) 등 일부 표시가 있을 뿐 전체적인 악보는 ‘black notes’다.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는 우리 연주자들의 해석에 따라야 한다.” 그는 풍부하고 저음으로 장중하게 연주하는 것, 짧게 끊어서 강하게 연결하는 것 등 극단적인 속도, 강약에 따른 해석을 시연까지 보여준다. 
그가 TV에서 대놓고 자신과 굴드의 해석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굴드! 너의 해석이 이상한 것이고 음악도 이상할 수 있다”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굴드에 대하여 “위대한 젊은 피아니스트 Great Young Pianist”라고 표현해 주었다.

미국의 번스타인은 유럽의 카라얀과 20세기 후반 세계를 양분한 위대한 지휘자이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음악계를 주도하던 시대에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였고, 카라얀처럼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번스타인은 비록 굴드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피아니스트로 교체하지 않았고 자신의 해석과 완전히 다른 요구를 한 굴드의 방식에 맞춰 지휘를 해 주었다. 
굴드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연주도 취소하는 사람이었지만 어쩐 일이지 그냥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 얘기를 듣고 있었고, 번스타인의 말이 끝나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주를 시작하고 번스타인은 이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기이한 천재였던 굴드는 작곡가가 만든 감옥, 악보에 갇히지 않았다. 누구나 ‘굴드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구사한 피아니스트는 결코 없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굴드는 연주자도 작곡을 해야 한다. 남의 곡을 연주만 한다면 음악의 발전은 없다고 했다. 그는 바흐가 아닌 자신의 음악, 즉 자신만의 곡을 연주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하고, 적폐라고 몰아 세우는 것은 쉽다. 상대방과 생각이 달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 마음에 맞지 않아도 그에 맞춰 연주를 해 주고 지휘를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가를 비롯한 많은 지휘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연주자를 해고하거나 갈아치우는 경우를 보게 된다. 연주자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요구에 맞춰 지휘를 해 주고 격려했던 번스타인과 같은 지휘자가 우리 사회에도 많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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